낭만닥터 김사부2를 보고, 김외숙 소설가님이 보내온 문학칼럼 1편을 읽고, “서로 다른 견해들이 만든 매운 공기들”이 이젠 “신종 바이러스”로 찾아와서, “두꺼운 마스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나는 성경앞에 있다. 사무엘하 17장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다윗의 친구 후새가 다윗에게 편지를 보냈다. 압살롬의 반역이 거세지니, “빨리 도망치라”는 것이고, 급한 단어로 “줄행랑치라”는 뜻이다. 그 편지를 받자마자, 다윗과 그 백성들은 요단강을 그날 밤에 도하(渡河)했다. 여호수아처럼, 요단강을 건넜으나, 다윗은 서에서 동쪽으로 넘었다. 광야길이다.
오늘 새벽에 카톡 편지가 한통 날아왔다. 담임 목사님이다. 짧지 않은 편지 끝에 “아직 호렙산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문장이 있었다. 어찌나, 내 마음에 와 닿던지, 내게 손을 내미는 예수님의 손길이다.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건너야할 요단강이 어떠하든, 때에 따라 건너가야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 요단강은 각자마다 서로 다르게 놓인다. 일어나서, 아무쪼록 건너야만 한다.
하루의 문을 닫아야할 지금, “행복한 아침!”이라고 카톡을 보내온 분이 있다. 캐나다에 거주하시는 김외숙 소설가님! 그곳은 여기보다 14시간 늦다고 한다. 참으로 우리는 신비한 세상을 살아간다. 여긴 저녁, 거긴 아침이다. 동시에 서로 다른 낮과 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소통하는 그런 사회다.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스데반 집사가 본 예수님은 오늘, 어디를 보고 계셨을까? 문재인 대통령처럼, 예수님도 오늘, 지금, 어떤 생각을 하실까?
다윗은 기도했다. 15:31에서 “여호와여 원하옵건데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다른 방법으로 들어주셨다. 아히도벨은 지혜로운 모략을 내놓았으나, 압살롬이 보기에 어리석게 보이게 했다. 처음에는 지혜롭게 들렸으나, 다윗의 친구 후새가 말하자, 지혜롭게 보이던 아히도벨의 모략이 어리석게 바뀌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겨자씨와 같은 기도를 통해서 방향이 전환된다. 나는 기도하는 몇가지가 있는데, 어떤 사건이 오늘 틀어졌다. 기도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얼마나 기쁘던지요?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인생은 기도외에 답이 없다. 기도는 주님께 부탁하고, 주님께 맡기면서, 아무쪼록 건너야할 강을 건너는 것이다. 나는 아직 호렙산에, 그 동굴속에 이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