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장은 돈이 많았다. 재물이 많다는 것은 능력과 지혜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는 율법을 완벽히 지켰다. 이제, 영생을 받을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본인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다.
“네게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한가지 부족한 것’은 너무 너무 너무 중요하다.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가고, 그것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간다. 부자청년은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을 알기 위해 모든 율법을 몸부림치면서 지켰던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 싯구처럼, 봄에는 소쩍새로, 여름에는 천둥으로, 율법의 계명을 지켰으니, 국화를 피우기 위함이다. ‘한가지 부족한 것’은 ‘꽃피움’이다.
다윗에게 보냄을 받은 나단 선지자는 “왕에게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을 책망했다. 곧, 회개였다. 다윗왕은 골리앗을 죽였고, 사울을 용서했고,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재산을 돌려줬고, 언약궤를 찬양했고, 이스라엘 민족의 융성을 위해 모든 것을 다했으니, 이보다 훌륭한 왕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 그가 어느날 밧세바와 간통했다. 불륜사건을 덮으려고 남편 우리아를 간접 살인했다. 측근 요압장군과 공모해서 야비한 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인생은 누구나 내면에 이러한 여리고성이 존재한다. 문을 굳게 닫고 침묵해도, 마음속에 있는 온갖 탐욕과 미움과 증오와 분노가 스물스물 기어 올라온다. 무너져야한다. 주님은 부자청년을 위하여, “마음속 맘몬신을 없애고, 이제 나를 따르렴”이라고 말씀을 줬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르면, 영생이다.
“네게 부족한 한가지”는 성경앞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내게 부족한 한가지”가 무엇인지, 낮은 언어로 주님께 물어야한다. 주님은 항상 알려주신다. 우리는 주님안에서 ‘부족한 한가지’가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해주셨다. 우리는 ‘겨자씨’처럼 한가지만 하면 된다.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고칠 때는 “믿기만 하라”고 했고, 야이로 회당장 딸을 살릴 때도 “믿기만 하라”고 했다. “믿음”은 항상 “아직도 부족한 그 한가지”에 해당된다.
소금이 없으면 음식을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소금은 나눔이며, 희생이다. 부자청년의 삶은 완벽했으나, 영생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부족했다. 한가지는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 다른 한가지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두가지는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주님은 가난한 자들속에 있음이여!!! 주님은 “나와 복음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은 100배의 축복을 받고, 영생까지 받는다고 언약하셨다. 주님의 약속은 진실하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 주님의 말씀이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어떻게 가능할까? 주님은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으로서는 불가능이 없다.
우리는 재물이 많은 자들이다. 경제적 재물이 많이 않아도, 탐심이 가득한 부자들이다. 지식의 부자들이다. 주님은 ‘대표적 대속제물’로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무덤에서 살아나심으로 ‘사망의 바늘귀’를 지나서 천국에 도달하셨다. 주님을 믿는 자마다 주님과 함께 이미 사망을 넘어섰으니, 바늘귀를 통과한 것이다. 한번 통과한 바늘귀는 다시 통과할 필요가 없다. 인간 스스로 바늘귀를 넘어서려면 안된다. 주님을 믿음으로 바늘귀를 넘어서야한다. 그래서, 주님은 재물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과감히 투자하라고 하셨다. 또한, 주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진정,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