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이 반역했다가 상수리 나무에 머리가 걸려서 붙잡혔다. 요압장군이 창으로 살아있는 심장을 찔러 죽였다. 아간도 시날산 외투를 훔쳐서 숨겼다가 들통나서 죽임을 당했다. 가룟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의 은신처를 넘기고 자살했다. 에서는 팥죽 한그릇에 장자권을 팔았다.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고백해도, 인간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압살롬을 향해 요압이 창을 찔렀다. 압살롬은 불의하고, 요압은 의로운가? 그는 아브넬을 사사로이 죽인 죄가 컸다. 성경속에 있는 모든 악인은 우리를, ‘나’를 대표한다. 그들의 거울속에 내 모습을 발견해야, 내 안에 있는 그들의 형상이 지워진다. 성경을 읽는 이유는 이것이다. 누가 죄인이냐를 따짐이 아니요, 내안에 숨겨진 죄인들을 찾아내서, 몰아내기 위함이다.
압살롬이 죽었을 때, 다윗은 마음이 심히 아파서 울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했다. “내 아들아!”를 다섯 번, “압살롬아”를 세 번이나 부른다. 이것은 진실로 통곡하는 슬픔이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의 죽음을 이토록 슬퍼하셨고, 또한 부활하셨을 때, 참으로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앞에 우리의 압살롬됨을 자백해야한다. 또한 우리의 가룟유다됨을 자백해야한다. 우리의 아간됨을 자백해야한다. 우리의 아담됨을, 에서됨을 자백해야한다. 우리는 모두 압살롬들, 유다들, 아간들, 아담들, 에서들에 속할 뿐이다.
압살롬은 백성의 마음을 훔쳤고, 아간은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와 금과 은을 훔쳤다. 과연, 여기에서 자유로울 자가 있는가?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한다. 또한 금과 은과 옷을 좋아한다. 하나님의 공적인 재물을 특별히 훔친 적은 없다고 하여도, 내 영혼은 본래 하나님의 것인데, 내 마음대로 썼으니, 이것이 가장 큰 죄다. 압살롬은 교만, 아간은 탐심이다. 인간은 본래 교만하고, 욕심이 많다. 가룟유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예수님의 은신처를 누설했고, 스승을 팔았다. 배신죄(背信罪)다. 배신죄에서 자유로울 자가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배신죄’에 걸려있다. 왜냐면, 기존에 믿는 사상을 배신해야 주님을 믿을 수 있다. 세상을 배신하지 않고서 어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손에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 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삼하18:14)
죽일만한 사람을 죽였으니…… 이런 마음으로 대부분 적폐청산의 칼을 뽑고, 정의를 울부짖는다. 그러나, 그런 요압이 결국 하나님의 성막에 있었어도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 다윗은 마지막 유언으로 ‘요압의 처형’을 지목했다. 남잡이가 결국 자기잡이다. 누군가의 죄가 보이거든, 자신의 죄로 여기고, 눈물로 참회해야한다.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뿐이다. 압살롬이나, 요압이나, 우리나, 모두 피차 일반이다. 구원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