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정결운동을 하시고, 아침에 배가 고파서 무화과 나무에게 갔더니, 먹을 것이 없었다. 때가 아니었다. 주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갔더니, 매매상인과 제물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자들로 넘쳤다. 성전이 성전답지 못한 것이다. 마치, 두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에 갔더니, 음행하는 자들로 넘쳐난 것과 같다. 강도의 굴혈이 되버린 성전은 그것이 ‘음행’이다. 성전이 하나님을 남편삼아서 기도해야하는데, 돈버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으니, 창녀의 지체가 된 것이다. 맘몬신이 넘쳐난 것이다. 옳지 않다.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주님은 저녁이 되어서 떠났고, 다음날 길을 가는데, 그 무화과 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었다. 헤롯성전이 훼파됨을 암시한다.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 되었으니, 그 미래는 파멸이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을 통한 성전기능을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으면, ‘믿음의 성전’이 된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하도록 훈육했다. 감독과 집사를 뽑을 때에도 아무나 뽑지 말고, 자격조건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했다. 교회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진리의 기둥이며 터이니, 세상적 기준에 따라 사람을 뽑아서는 안된다. ‘경건과 은사’가 영성이 뿌리내리게 할 중요한 요소다. 헤롯성전은 뿌리째 마른 무화과 나무처럼 결국 멸망했다. 왜냐면, 영성의 뿌리가 없어서 그러한 것이다. 기도와 회개와 찬양은 교회의 영성을 뿌리내리게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개인성전도 영성이 뿌리 내리게 해야한다. 기도와 찬양과 말씀이 마음에 뿌리가 내리지 않고, 돈으로 가득차면 저주받은 무화과 나무가 될 것이다. 헤롯성전도 멸망당했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헤롯성전은 돌비에 새겨진 언약판과 같고, 사람의 마음성전은 성육신으로 오신 주님과 같다.
사무엘하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땅에 ‘3년 기근’이 들었다. 아합왕때 엘리야의 예언으로 3년 기근이 있었다. 누군가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 상달된 것이다. 누구의 기도인가? 다윗은 그것을 놓고 기도했더니, 기브온 족속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간 것이다. 기브온 족속을 탄압한 사울의 학대가 죄가 되었다. 그래서, 다윗이 기브온 족속의 원한을 풀어주고, 나아가 사울의 가문까지 나중에 유골을 수습해서 어루만져준다. 사울의 가문, 기브온 족속의 원한을 풀어주자, 비로소 비가 내렸다. 사람과 사람, 가문과 가문이 서로 원수가 되면 하늘에서 비가 멈추고, 기근이 생긴다. 마음에 기근이 생기는 것은 말씀이 들어오지 않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평안이 되지 못하고, 세상 것이 먹을 것으로 들어온다면 그것은 기근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영혼의 양식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울과 기브온의 원한 문제를 풀어주고, 블레셋과 전쟁을 했는데, 다윗이 죽을 뻔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기브온 족속의 원한을 풀어준 것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신다.
예레미아 37장에 보면, 예레미아는 백성들에게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말씀을 외쳤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그것을 듣지 않고, 예레미아를 감옥에 가둬버린다. 뚜껑을 씌운 웅덩이에 가뒀다. 바로의 군대가 구원병으로 올라오니, 이스라엘 궁궐은 다시 교만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번 작정하시면 당해낼 사람이 없다. 사람은 전쟁을 위해 마병을 준비해도,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 이스라엘이 이미 하나님을 떠났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언약한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각 사람도 마찬가지다. 과연, 마음속에 십자가의 도가 있는가? 그것을 분명하게 살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