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0:22에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다”고 했고,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다”고 했다. 인생은 집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까페로, 거리에서 거리로,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다니는 메뚜기 인생이다. 10대에서 20대로, 20대에서 30대로, 그러다가 무덤속에 묻힌다. 메뚜기는 메 산(山)과 뛰다가 합쳐졌다. 산에서 뛰어다니는 곤충이 ‘산뛰기’의 메뚜기다. 아무리 뛰어봤자, 산을 벗어나지 못하는 메뚜기 인생이다. 인생은 아무리 잘 살아도, 아무리 힘이 강해도, 사망앞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죽음을 풀어낼 자가 없다. 죽음은 오직 십자가의 피흘림을 통해서만 넘어갈 수 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다.
메뚜기가 산을 벗어나는 비결은 독수리의 날개밑에 붙는 것이다. 독수리는 곧 성령의 독수리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십자가 밑에 들어가면 안식이 있다. 나는 메뚜기에 불과하다. “버러지 같은 야곱아!”라고 주님은 말씀했다. 나는 평생 돈벌다가, 공부벌레, 책벌레처럼 배우다가, 밥벌레처럼 먹다가, 그렇게 인생이 중년의 언덕에 올랐다. 어떤 메뚜기는 산 정상에 있고, 어떤 메뚜기는 바위틈에, 어떤 메뚜기는 나무꼭대기에 있고, 어떤 메뚜기는 풀잎위에 있다. 모두 인생 메뚜기들이다. 그래서,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성령의 은혜를 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야한다. 성령을 받은 자는 전혀 새롭게 변화한다.
메뚜기와 독수리는 서로 대비된다. 그와같이 풀과 바람이 서로 대비된다. 광야에 풀과 꽃이 피었는데,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 모든 풀들이 시들고, 꽃이 마른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세상의 권력은 무너진다. 인생은 독수리앞에 메뚜기에 불과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자마다 독수리의 새끼가 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이 생긴다. 성령을 받은 자마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성령은 그 믿는 자를 직접 낳으신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이 낳았다는 뜻이다. 성령이 낳은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