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이웃집에 살던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유다와 극명하게 대립된다. 유다는 예수님의 몸값을 받고, 대제사장들에게 ‘은신처 정보’를 제공하기로 약조했다. 민족을 위하거나, 세상을 위하여 ‘공의로운 일’을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각자 마음속에 있다. ‘배신’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지 않는다.
“깨뜨림”은 매우 중요하다. 매우 값진 향유옥합을 깨뜨려서, 주님의 머리위에 부었다. 인생은 이러해야한다. 베다니 마리아처럼, 자신을 부인함으로 주님께 모든 것들 바쳐야한다. 모세가 신발을 벗은 것과 같다. 신발을 벗는 것은 단순히 ‘교만’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 모든 주권을 맡기는 것이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옥합을 바치고, 모든 인생을 걸었다. 오빠 나사로가 죽음에서 살아난 것을 직접 목격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알았고, 또한 십자가의 죽음을 완벽히 깨달았다. 그래서 장례를 예비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마가복음 14:30에서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했고,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했다. 14:50에서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다. 66~72까지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완벽히 주님을 부인했다. 이 사건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있다. 베드로는 베드로가 믿는 주님을 부인한 것이다. 이때, 베드로는 통곡했다. ‘정치적 그리스도’가 깨지고, ‘대속적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베드로로 거듭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신이 믿는 그 힘이 깨져야만, 주님께서 구원주로 임하신다.
“향유옥합”이 깨졌다. 그리고, 그 향기가 주님의 온 몸에 흘러서 방안을 가득 넘치게 흘렀다. 그와같이, 주님은 성만찬식에서 빵을 쪼개서 나누셨다. 빵은 주님의 몸이다. 주님의 몸은 십자가에서 버려짐으로 쪼개져, 그 생명이 피와 물로 흘렀다. 향유옥합이 깨지듯이, 주님은 어린양의 몸을 십자가에 바친 것이다. 그리고, 50일 후에 성령강림의 대역사가 일어났다. 성령강림은 주님의 십자가 향유옥합을 통해서 이 땅에 펼쳐진 거룩한 성령의 향기다. 주님의 향유옥합은 곧 ‘몸’이다. ‘피’는 그 향기다.
디모데후서 3:5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이 나온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너는 돌아서라”고 경고했다. 가룟유다처럼, 직분은 가졌으나 그 행함은 사망의 냄새를 풍기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이다. 반면, 베다니 마리아는 향유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한다.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행하는가? 인생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온전하게 부어야한다.
디모데후서 3:15에는 “성경은 능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성경속에 있으며, 진리의 성령을 통해서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 진리의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거룩한 영으로, 결코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의 영혼이 곧 ‘성령’이다.
사무엘하 2:1에서 성령으로 행하는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 묻고 있다. 현실이 자기가 보기에 좋게 돌아간다고 해도, 주님께 묻고 행해야한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기를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하니, 하나님께서 “올라가라”고 했다. 이에 다윗은 “어디로 가리이까”하니, 주님께서 “헤브론으로 갈지니라”고 해서, 그곳에 갔더니 백성들이 나아와서 왕으로 삼고 기름을 부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덥썩 취하면 아담과 하와처럼 뱀의 독에 물리거나, 쥐덫에 잡힐 수 있다. 극히 조심해야한다. 기도하고 행하는 것이 지혜다.
가룟유다는 기도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이 있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경고했으면, 자신의 고집을 꺽었어야한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반대했다가, 주님의 말을 듣고 헤르몬산에 올라가서 고집을 꺽었다. 가룟유다는 여러차례 주님께서 경고했으나, 성령으로 행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니, 주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다. 개구리 영이 들어가면,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정반대로 행하면서 마귀의 도구로 쓰인다. 불행한 일이다. 가룟유다는 회개할 기회를 잃었고, 베드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회개함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향유옥합의 이미지는 주님의 몸된 성전으로도 확장된다. 주님은 헤롯성전의 멸망을 예언했다. 성전이 멸망하자, 그때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펼쳐졌다. 건물성전이 깨지니, 사람성전이 전세계로 펼쳐진 것이다. 깨어짐은 흩어짐의 역사를 일으킨다. 해달별이 무너지니, 그때 인자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어떤 것이 깨지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을 없앴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다.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