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누가복음 5장을 읽었다. 누가는 참 독특하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나사렛 사명 선포식’이 없다. 누가복음에만 있다. 또한, 베드로의 죄 고백 사건도 누가복음에만 있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누가복음에만 있는 사건들…. 누가의 관점이 드러난다. 누가복음 1:3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에서 알 수 있듯이, 누가는 ‘근원’을 다룬다.
4:44에서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고 했다. 마가복음에는 나병환자 치료 사건이 이어진다. 누가복음에는 무리가 몰려와서 말씀을 듣는데, 베드로와 요한은 밤이 새도록 그물질을 했다. 즉, 예수님과 함께 전도여행을 가지 않았다. 5:11에도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 대박이 터진 그 사건”으로 베드로는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다. 주님은 죄인을 위해 오셨다. 죄인을 회개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이 땅에 나타나셨다.
베드로-나병환자-중풍병자-마태,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모든 등장인물의 공통점은 ‘죄’와 ‘말씀’이다. 베드로는 죄를 자복했고, 나병환자는 깨끗함을 받고 제사장에게 예물을 드리도록 권면을 받았고, 중풍병자는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으로 일어나 걸어갔고, 마태는 세관에 있다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전도됐는데, “죄인들과 식사”로 주님이 구설수에 올랐다. ‘죄’가 공통 키워드다. 누가는 말한다. 베드로와 마태가 곧 나병환자요, 중풍병자다. 중풍병자는 4명의 친구들에게 실려서 주님께 왔다. 베드로도 비슷했다. 동생 안드레의 권면을 받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배가 없으면 먹고 살 수가 없었다. 나병환자는 격리 대상자들이다. 마태는 사회적 지탄을 받고, 로마의 앞잡이로 살았다.
“죄사함을 받았는가”
진정 그렇다면, 베드로처럼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를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다. 진실로, 말씀을 의지하는가? 4명의 등장인물에게 주님은 동일하게 말씀을 전하셨다.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표적이 나타났다. 베드로에게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고, 나병환자에게는 “깨끗함을 받으라”고 했고, 중풍병자에게는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했고, 마태에게는 “나를 따르라”고 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대로 되었다.
베드로는 주님께 대답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인생은 날마다 살아간다. 하루를 살면, 스스로 일어나 산다고 믿지만, 하나님께서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면 하루는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들에게 ‘하루의 시간’을 허락하신다.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을 맞는다. 지금 살아있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한 시간속에 있다. 말씀에 의지해서 살고 있는가? 믿음에 의지해서 살아가는가? 의지하는 것이 ‘나의 지혜’인가? 성령의 능력인가? 깊게, 고민해야한다.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나요? 사람들은 묻는다. 베드로와 마태와 중풍병자와 나병환자에게 주님은 땅에서 오셨다. 평면적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위에서 내려오신다. 즉,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신다. 눅24에서 엠마오로 낙향하는 두 제자에게 주님은 나그네처럼 나타나서 동행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구운 생선 한 토막까지 잡수셨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에 대해 알게 하셨다.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눅24“49)
주님은 날마다 믿는 성도를 찾아오신다. 성령으로, 또는 친히 방문하신다.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니,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성도의 지혜와 믿음이다. 베드로, 마태, 나병환자, 중풍병자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아서 신랑으로 오신 주님을 맞이했다. 엠마오로 낙향하는 두 제자도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오늘, 지금, 각자를 찾아오는 주님을 진실로 영접하고 살고 있는가? 혹시, 주님을 향해 “유령이다!”라고 오해하고 있는가? 주님은 날마다 마음의 수면으로 걸어오신다. 주님은 벌써 마음의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그를 찾을지라!!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지 못하니, 가짜 신랑을 주님으로 믿는 것이다. 거라사인 군대귀신들도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영접했는데, 하물며 우리랴!! 귀신만도 못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