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16:10)
사람들은 큰 돈을 벌면, 크게 하겠다고 마음 먹지만, 작은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것으로 사람은 드러난다. 작은 일을 어떻게 행하느냐가 곧 큰 일을 어떻게 행하느냐와 같다. 작은 일을 할 때 마음이나 큰 일을 할 때 마음이 모두 동일하다. 그래서 작은 일을 한 것을 보고서 그 사람을 분별하고, 알아야한다. 주님은 ‘불의한 재물’로서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 그때,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하셨다. 이 말씀이 지극히 합당하다.
재건축재개발 현장에 가서 보면, 동의서를 걷는데 있어서, 지극히 작은 것 하나, 곧 동의서 1장을 걷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는 조합이 있고, 오만한 자리에 앉아서 지극히 작은 동의서 1장 보다는 더 많은 숫자 부풀리기에 취한 조합이 있다. 후자의 경우, 결국 낭패를 당한다. 지극히 작은 동의서 1장, 곧 조합원 1명의 가치를 아는 조합은 결국 승리한다. 조합원이 집행부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그때 조합 집행부가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면 안다.
지극히 작은 자인 조합원이 집행부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지극히 작은 자로 취급할 경우, 그 조합 집행부는 ‘권력의 맛’에 취한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가 왔을 때, 집주인이 왔다는 마음으로 지극 정성으로 대접을 할 경우, 그 조합 집행부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이다. 집행부는 결국 조합원의 심부름꾼이다. 왜 지극히 작은 자일까? 조합원 한 사람이 결국 조합의 눈동자이다. 한 사람이 보고, 그것을 전체에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나는 수백권의 책을 썼지만, 그러한 성과가 나를 게으르게 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내가 나의 과거에 갇혀서 집필에 신경쓰지 않고, 날마다 내 정신의 칼날을 날카롭게 하지 않는다면, 글쓰는 일은 금새 녹슬 것이다. 녹슨 칼은 풀을 벨 수 없고, 글을 쓰지 않는 필력은 금방 들통난다. 그래서, 나는 지극히 작은 문장 하나를 완성하려고 새벽마다 몸부림친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주님은 천국은 겨자씨와 같다고 했다. 지극히 작은 겨자씨가 곧 천국이다. 천국은 이 세상에 완성되는 “대도시”가 아니고, “겨자씨 한 알”이며, 그 겨자씨가 점점점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이다. 큰 것을 바라지 말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되어야한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가?
가령, 성경 100독, 성경 2000독을 자랑하는데, 그것보다 완벽하게 암송하는 성경구절 1구절이 낫다. 완벽하게 암송하는 성경구절은 생명력이 있으며, 주님의 말씀은 구원의 능력까지 있다. 그래서 성경구절을 암송하는데 게을리하면 안된다. 집을 지을 때는 터파기 공사가 가장 중요하듯이, 신앙생활에서는 성경말씀 암송이 가장 중요하다.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듯이, 마음속에서 성경말씀이 울려 퍼질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온다. 성경말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극히 작은 성경문장 1구절이 인생의 운명을 좌우한다. 외울 때는 단어 하나까지 정확히 암송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