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아브라함이 3일동안 걸어서, 이삭에게 번제나무를 지게 하고, 모리아산을 올랐다. 어쩌면, 겟세마네 동산 그 즈음일 것이다. 이삭이 번제할 어린양을 물었을 때,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나눠졌다. 믿었던 아버지가 철저히 자식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번제물로 바쳤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족애다.
비정한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마귀의 존재, 악령의 존재를 믿는다면, 지나친 자녀사랑으로 자녀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성장하면서, 결국 인본적인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나친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성령의 보호하심을 알지 못해서, 형식적인 신앙인으로 ‘영적 성장’이 멈출 수 있다. 사람의 보호는 영적 장애요소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주님은 가룟유다의 배신을 이미 알았고, 나아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을 아셨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죽은 나사로를 살렸을 때, 그들은 주님을 죽일 것을 결정했다. 왜냐면, 민심이 주님께로 향하면서 로마제국의 눈치를 살핀 것이다. 유월절은 불안하게 흐르고 있었으며, 주님은 마지막 식사를 제자들과 기념했다. 그리고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서 기도하셨다.
이곳은 압살롬이 일어나서 급하게 피신했던 다윗이 머물렀던 곳이다. 제사장 사독이 언약궤를 가지고 다윗에게 오자, 다윗은 “언약궤를 가지고 성전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으니,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은 다윗의 마지막 길로서, 믿음의 광야길로서 성전을 향하신 것이다.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유대광야에 내몰려서 시험을 받으시듯,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주님은 성령에 이끌려서 유대성전으로 내몰림을 당하신다. 그리고, 3일후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의 본격적인 복음전파의 시대가 개막된다.
주님은 유혹을 받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주님은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주님을 도왔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다. 주님도 그러하신데, 하물며 죄인된 우리랴!! 우리의 의지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행할 수 있다.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 주님은 습관대로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지만, 습관적 의지조차 하나님께 맡겼고, 어둠의 권세앞에 끌려갔으나,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인생은 주님을 따라 살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