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장에는 두 부자 이야기가 나온다. 보통,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데, 그 비유 앞에 또 다른 부자 이야기가 있다. 누가복음 16장은 두 부자를 비교한다. 앞의 부자는 불의한 청지기까지 용서하면서, 자신의 재물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지는 것을 기뻐한다. 반면, 거지 나사로와 이웃인 부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못했다. 이웃이 누구인가?
돈은 왜 버는가? 집은 왜 사는가? 부동산학 개론에 따르면, 돈을 버는 이유는 두 가지다. 돈을 벌기 위해서, 돈을 쓰기 위해서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집을 사는 이유는 두 가지 목적이다. 첫째, 거주 목적이다. 둘째 팔기 위한 목적이다. 집을 팔기 위해 사는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집을 사는 것이다. 이것을 차액투자라고 한다.
거지 나사로는 자색옷을 입은 부자의 문밖에 있었으나, 그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부자는 언제나 이웃과 소통하지 못했다. 그런데, 부자는 스스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음부에 간 부자는 자신의 형제들을 끔찍이 챙겼다. 거지 나사로는 챙기지 않아도, 자신의 형제는 챙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족을 챙기는 것이 ‘이웃 사랑’의 표준이 될 수 있을까?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자색옷을 입은 부자는 부유함으로 자신의 만족과 향락과 잔치를 위해서 썼고, 거지 나사로와 담을 쌓고 살았다. 돈의 경계선이다. 그렇다면, 돈은 의로 비유된다. 의로움이 많아서, 의롭지 못한 자와 경계선을 긋고 서로 소통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자가 의로울 수 있을까? 율법으로 의로운 바리새인보다 불의한 세리가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예수님의 비유를 기억해야한다.
내게 뭔가 넘쳤다면, 그것은 흘러가게 하려는 주님의 뜻이 있다. 건물을 증축공사하다가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데려갔다는 주님의 비유를 생각하면, 우리는 재물을 이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야한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 법이다. 주변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 여기서 불의의 재물은 ‘세속적 재물’을 뜻하며, 돈은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사람을 사귐에 있다. 즉, “돈을 쓰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부자가 음부에 간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만을 위해서 돈을 썼기 때문이다. 거지 나사로를 문안에 들여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살아온 사연을 들었다면….. 또는 거지 나사로의 병을 고쳐줬다면….. 또는 거지 나사로가 왜 거지가 됐는지 그 사연을 듣고서 문제를 해결해줬다면….. 천사들이 그 부자도 아브라함의 품에 데려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