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장 예수님의 성경강해 오래전, 세상속에서 “언론의 사명”에 대해 강연을 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많은 강사들이 앞에 강의하고, 나는 맨 꼴찌였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내가 준비했던 강의가 있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나왔다. 듣는 청중들의 박수를 받기 보다는 매우 거북하고, 불편한 내용들이며, 그들의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말이 나왔다. 내가 외치면서도 내가 충격받을 내용들을 전했다. 누가복음 20장을 읽으면서, 그때 사건이 생각났다. 청중이 원하는 인기강의를 할 것인가? 혹은 청중이 불편할지라도, 청중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청중을 향해 외치셨다. 그때 반대하는 종교지도자들도 있었다. 그들도 청중속에 있었고, 그들을 향해 노골적인 비유까지 사용하셨다. 바로, 포도원 농부 비유다. 주님은 십자가 비유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도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의 반대에 봉착했다. 십자가를 거부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말씀하신 것이다. 곧, 권력을 원하는 제자들에게 “권력의 부패”를 단호하게 교육하신 것이다. 전도는 무엇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말씀을 외치신 주님의 행위는 전도일까? 설교일까? 성경강해일까? 전도활동은 현대사회에서 교회의 성도 숫자 증가로 인식된다. 교회의 성도가 되어서 출석하고, 십일조를 내야만 전도했다고 인정받는데, 과연 그러한 제도가 성경적 본질과 일치하는가? 주님은 베드로를 불렀고, 나아가 반대하는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을 향해서도 그들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를 던졌다. 그것 때문에 위험에 처할 수 있었으나 행하셨다. 이것은 전도활동인가? 아닌가? 데나리온 동전 사건도 의미심장하다. 세금납부 문제인데, 주님은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고 물으셨다. 가이사의 형상이 있으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마음판에 새겨진 형상과 글은 누구의 것인가? 사회활동을 하다보니, 세상지식을 탐구하면서 내 안에 세상의 형상이 새겨질 때도 있다. 마음판에 말씀이 새겨지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어야 한다. 성령께서 마음속에 함께 사시면서, 인생의 영혼을 깨우치시니, 겸허히 낮아져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성령님을 부르지 않으면, 성령님도 침묵하신다. (삭개오는 마음속에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있었으나, 주님을 만나서 그의 집에 주님을 초대한 이후부터 마음판에 주님의 형상과 글이 새겨졌으니, 그는 주님의 것이 되었다. 주님의 것은 주님께 가는 것이다. 곧,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