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의 피는 거룩한 씨앗이다. 기독교는 피의 역사였다. 주님께서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나눠주셨고, 십자가는 지금까지 상속됐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을 증명하는 호패와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을 지불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어린양 예수님의 결단이 집약된 마침표다. 대통령의 아들이 누리는 혜택이 상당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랴.
블란디나는 장애인+여성+노예+기독교인이었다. 로마제국 시대에 가장 나쁜 것들로서 4가지가 중첩됐다. 주인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그녀는 체포당했고, 황제숭배를 끝까지 거부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황제숭배의 분향을 거부한다.” 그녀의 대답이었다. 사자밥으로 던져졌으나, 사자들이 달려들지 않았다. 그녀의 피부를 벗기고, 불로 달군 쇠로 고문하고, 채찍질을 한 후에, 황소들이 있는 곳에 던져졌다.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보았다. 황소들이 그녀를 짓밟았고, 그때 순교했다. “저곳에 살륙당한 어린양 예수님이 계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짓밟힌 그녀의 마지막 모습에서 예수님을 목격했다.
페루페투아는 세베루스 로마황제 시절에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 들통나서 붙잡혔다. 페루페투아 아버지가 그를 설득했다. 그때, 그는 “아버지, 이 그릇에 물이 담겼다고 물그릇이 아닙니다. 이 그릇은 본래의 이름이 있습니다. 저도 이 세상에 잠시 살고 있지만, 본래 제가 만들어진 그 모습이 제 이름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길 원합니다.” 아버지는 낙담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니,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검투사의 칼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와 핍박과 죽음은 십자가에 메다린 예수 그리스도와 일체되는 신앙의 정점이 되었고, 교회는 짓밟힘을 통해서 밀알의 성장을 이뤘다.
계시록 12장에도 성전 안마당은 측량하고, 성전 밖마당은 이방인에게 짓밟힘을 당하도록 내버려두라고 했다. 밖마당이 짓밟힐수록 안마당의 촛대는 불길이 찬란해진다. 짓밟힘을 당함으로 교회는 성장하고, 가라지의 괴롭힘을 통해서 알곡의 인내가 강해지는 법이다. 현실의 환란은 없어지지 않는다. 시베리아의 찬바람처럼 각종 고난이 성도를 괴롭게 한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행복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짓밟힘이 없다면, 세속의 평안함이 생겨서 촛대가 옮겨질 수도 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환란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