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밖은 고요하다. 여기도 차분하다.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마음의 수면에 울려 퍼진다. 이 느낌, 이 소리, 태초의 물방울 소리 같다. 상상의 날개는 창공을 솟는다. 나의 평생에 성경을 알고픈 심경이 간절하였고, 그 꿈을 성취했다. 또한 이뤄간다. 성경의 지혜는 날마다 길이와 넓이와 부피가 확장된다. 우주팽창은 말씀을 통해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지금도 우주는 어떻게든 확장된다고 과학자들이 증언한다. 물리적 공간개념이다. 심령속에 펼쳐지는 새로운 우주가 있다. 곧, 천국이다.
잠을 자고 일어났다. ‘짓밟힘’이란 단어가 나를 짓눌렀다. 환란과 함께! 내 삶의 곤고와 공허는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죽음을 동시에 겪은 이삭의 쓸쓸함처럼, 들판을 배회한다. 인생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수들로 가득하고, 난해한 방정식을 푼다고 해서, 인생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삭은 서쪽하늘을 보며 들판을 서성일 때, 멀리서 신부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리브가다. 고요의 서쪽에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온다. 맞이하자. 쓸쓸함은 하나님께로 가는 척박한 길이다. ‘짓밟힘’이 좁은문이다.
창세기 1:2에 이런 말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성경을 펼쳤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천지창조의 시작점이다. 인생이 혼돈스럽고, 홍수심판과 같은 환란이 깊은 곳에서 일어나면, 기뻐하라. 천지창조의 첫장면이다. 빛이 있으라! 빛은 어둠속에서 올라왔다. 짓밟힘은 빛을 창조한다. 어둠에 짓밟혀서, 버려짐을 당한 빛의 추출이다. 세상이 버렸는가! 기뻐하라! 빛의 아들이여!
유대교는 율법으로 주님을 버렸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죽으셨다. 율법과 세상이 주님을 짓밟았다. 십자가는 땅에서 하늘로 세워졌다. 하나님은 그렇게 구원의 빛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지금도 그렇게 탄생한다. 이신칭의에 따르면, 믿음으로 죄인이 의인이 된다. 죄인은 땅의 속성이고, 의인은 하늘의 속성이다. 땅과 하늘이 만난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죄인이면서 의인이다. 죄인된 인간이 주님을 만나 연합함으로 의인이다. 죄인된 속성이 주님을 통해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의인이 되었어도, 흙의 피조물은 그대로 남아있다. 죄의 욕구는 물방울처럼 뚝뚝뚝 떨어지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릴지라.
모든 사람은 ‘여자’다. 남자는 둘이다. 세상과 하늘이다. 누구를 남편으로 삼느냐가 그 운명을 결정한다. 흙에 속한 인간은 땅을 남편삼고 살 수 있고, 하늘을 남편삼고 살 수도 있다. 땅은 같은 동질성이다. 아담은 땅을 남편 삼았다. 그래서, 흙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아담인 주님은 하나님을 남편 삼았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이 영생을 창조했다. 하나님과 연합은 영원하다. 남편과 결혼한 신부는 남편 덕을 본다. 하물며, 하늘남편이랴!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