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부활, 그 증거’에 소개된 그 교회
– 사도행전은 지금도 기록되고 있다. 부활을 체험한 누군가를 통해 영원히~~~

[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기자]=부활, 재림, 성령, 십자가, 보혈, 죄, 마귀, 그리스도, 적그리스도, 천국, 보좌, 어린양, 증인….. 이러한 단어들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베스트셀러로 손꼽은 소책자, 마가복음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만 보더라도 위에 열거한 단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과 증인은 복음서의 중심이다. 기독교 즉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종교라면, 그 언어가 어떠해야할까? 춘천 한마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초대교회 원형을 만난 듯한 떨림을 겪고, 서울에 오기까지 내면에 기쁨이 가득했다. 집으로 오는 길이 다소 밀렸으나, 그 시간도 훈훈했다. 성경의 해박한 지식을 들은 것도 아닌데, 그저 단순한 진리,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빛이 어둠에 비추었다”는 아주 순수한 명제를 들었을 뿐인데, 마음에 빛이 비추는 기쁨이 흘렀다.
김훈님과 김미자님은 부부로서 춘천 한마음 교회 성도다. 나와 인연이 닿아, 예배 초대를 받고, 9월 25일 교회에 도착했다. 돌을 사랑하는 내게 춘천 한마음 교회는 한 눈에 들어왔다. 곳곳이 돌들이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한 작품도 돌들로 만들어진 돌산 위에 놓여있었다. 교회 벽체 디자인도 돌들로 꾸며졌다. 자연이 빚은 도자기, 돌은 언제나 자연스럽다. 교회 주차장을 비둘기처럼 한바퀴 돌자, 내 눈앞에 차가 스르르 멈추더니, 글쎄 나를 초대한 김훈님과 김미자님이 나타났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 천사가 존재한다면,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다. 물론, 우연으로 넘겨도 즐거운 일이다.
처음 방문한 교회여서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았는데, 뭐랄까, 방학을 마치고 등교한 새학기? 그런 기분이었다. 전혀 낯설지 않고, 경직되지 않은 성도들의 얼굴이 보기에 좋았다. 자유, 포근함, 다양성이 느껴졌다. 기도하는 성도도 있고,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는 성도도 있고, “RISEN”이란 영문이 큰 글씨로 좌측에 놓여있었다. 단상 뒤편 배경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축복 메시지, ‘열린문’을 상징화해서 그 사이에 십자가가 놓였다. 마치 십자가의 보혈로 천국문에 들어간다는 메시지다.
처음 방문하는 곳은 영화관과 같다. 적응하기까지 어둠이다. 누군가 손을 붙잡아 주지 않는다면, 마음은 금방 어색해질 수 있다. 다행스럽게, 내 옆에 앉은 김훈님이 날 잘 붙잡고, 교회 분위기를 쉽게 설명해줬다.
“사람들은 ‘기본’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기본기를 놓친 운동선수는 실전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잖아요. 신앙생활도 기본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교회는 ‘기본’을 강조해요. 만약, 선교지에서 사람끼리 갈등이 발생하면,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해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라’라고. 부부싸움을 해서, 목사님께 상담을 하면, 그것도 답이 동일해요. 복음으로 돌아가라! 예수님이 누구인가, 예수님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 여기에 모든 초점을 맞추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요. 성령의 은혜를 받고, 방언기도를 하고, 치유은사를 받았어도, 그 또한 복음을 드러내는 것이 중심이예요.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역을 하시는데, 예수님이 없는 은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초대교회는 온통 예수님에 집중했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어떻게 부활해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는지 성경을 통해 답을 찾고, 그 사실을 실제로 믿었어요.”
나는 날마다 성경을 읽는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날마다 조금씩 암송하고 있다. 복음서를 읽으면서 발견한 초대교회 원형의 흔적들이 춘천 한마음 교회에서 많이 느껴졌다. 성령님의 사역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듯, 설교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공식 예배를 통해 선포되는 설교와 함께 내 옆에서 들려준 김훈님의 이야기도 작은 설교였다. 춘천 한마음 교회는 성경의 언어를 실제로 이루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예수님은 3년의 사역기간 동안 제자 공동체를 놓고, ‘권위주의’를 없애려고 다양한 교육을 실시했다. 어린아이를 품에 앉고,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섬기는 자가 더 높다”라고 교육했다. 교회 공동체에서 권력은 내부의 적이다. 춘천 한마음 교회는 권위주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설교는 2016년 예배 영상이었다. 김성로 목사님은 한참 말씀을 전하시다가, 갑자기 누군가를 호명하신다. 단상에 올라와 성도가 간증을 전한다. 그렇게 연거푸 3명의 성도가 간증을 전했다. 설교단상은 모든 성도들이 동일하게 섰다. 제도적으로 본다면 목사와 성도는 계급이 분명 있다. 그런데, 부활을 증거하는 사역에서는 높낮이가 없었다.
또 다른 충격이 있다면, 구역 모임이다. 춘천 한마음 교회는 ‘구역’이 없다. 구역 대신에 ‘작은 교회’라는 제도가 있다. 곧,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공동체라는 개념이다. 작은 교회는 둘 이상의 공동체다. 많게는 10명, 적게는 엄마와 딸, 부부 그렇게 2명도 있다. 작은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 ‘일꾼’으로 불리고, 일꾼은 ‘지도자’로서 일하는 사람이다. 설교단상에서 복음이 선포되면, 그 복음의 주제에 대해 성도들은 일주일 동안 몸으로 살아내고, 본인이 깨닫고 실천하면서 느꼈던 사연들을 기록해서, 일꾼 지도자와 담임목사님께 직접 보내면서, 성도들끼리 소통이 이뤄진다. 즉, 설교는 일방통행이 아니고 성도들의 반응으로 쌍방향 통행이 이뤄진다.
왜 기도하는가? 기도를 하면 천사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도해야 하나님이 ‘명령’을 내리시기 때문일 것이다. 빛이 어둠에 비추니, 어둠이 이기지 못했다. 곧, 빛이 어둠을 이겼다. 복음의 빛은 지금도 태초의 빛으로 능력이 있다. 춘천 한마음 교회에서는 복음이 철학이 아니고, 실제 현상이다.
찬양 인도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실시간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라고. 아멘! 순교자 스데반도 죽기전에 실시간으로 예수님을 봤다고 누가는 증언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을 초월해 지금 현재 진행중이라는 것, 예수님이 살아있다는 것은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 그렇다. 사도행전은 지금도 기록되고 있다. 부활을 체험한 누군가를 통해 영원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