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루 공사가 진행됐다. 일단, 마루 공사를 하려면 모든 물건이 없어야 한다. 이것을 일컬어 “단도리”라고 한다. 작업을 위한 준비작업, 단도리를 잘해야 작업속도가 올라간다. 날씨는 비가 올 것 같았다. 비가 오면, 철근재단을 할 수 없으니, 비가 아직 오지 않을 때, 철근을 잘라야 한다. 이런 것도 “단도리”다. 어떻게 작업순서를 짤 것인가?
“다루끼 1200으로 36개, 철근 1000으로 32개 재단할 것”
나는 다루끼를 맡았고, 다른 직원은 철근을 맡았다. 지시받은 내용은 “철근재단”이지만, 현장에 가서 보니 이미 절단된 1m(1000) 철근이 16개나 있었다. 그래서 현장의 상황을 이야기하자, 변경된 지시가 내려왔다. 즉, 16개만 더 자르면 되는 것이다.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은 노가대이고, 건축가는 생각과 판단을 해야한다. 판단할 줄 모른다면, 생각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기계만도 못하다.
나는 다루끼 작업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36개 다루끼 작업을 하는데, 1000mm를 줄자로 36번 재려고 한다면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다루끼 한개를 1000mm로 자르고, 그것을 표준자로 만들어서 다른 것을 재단했다. 다루끼를 가지고 다루끼를 재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재단된 다루끼를 다시 측량해서 1000이 나온다면, 표준자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작업속도를 상당히 높힌다.
건축회사 사장님이 루바 작업을 보시다가, 창문 밑에 설치되는 루바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왜, 창문 밑에 루바를 해야하는지, 설명을 드리니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숲을 봐야 디자인이 보인다. 루바가 창문을 만나면 작업속도가 느려진다. 그런데, 창문 위아래에 작은 크기로 설치된 루바덕분에 창문은 액자가 생겼다. 루바가 자연스럽게 액자틀을 형성하면서, 창문은 마치 그림처럼 보였다. 계절마다 변하는 창문액자인 것이다.
오늘도 같은 선임과 팀을 이뤄 루바 작업을 했다. 작업속도는 어제보다 훨씬 빨라졌고, 창문과 만나는 접합지점에서도 선임은 척척 숫자를 풀더니, 1~2mm 오차 범위에서 루바를 정교하게 재단했다. 특히, 3~4줄의 루바를 설치하고, 레이저로 수직과 수평선을 확인하면서 라인을 맞추려는 선임의 모습을 보며, 건축의 정밀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꼈다.
138로 24개, 240으로 24개, 상당히 짧은 수치로 루바를 잘라야 했다. 이것은 아침에 터득한 다루끼 재단과 흡사하다. 줄자는 첫번째 루바를 측정할 때만 사용하고, 첫번째 루바를 다시 자로 활용하면 일의 능률이 향상된다. 138mm로 재단한 루바를 가지고 다른 루바를 측량해서 절단작업을 쉽게 완결지었다.
루바 설치는 음악의 리듬이다. 건축용어로 ‘난장’이라고 한다. 일정한 규칙없이 배열한다는 것인데, 루바를 군대식으로 오와 열을 맞춰서 설치하면, 보기가 민망하다. 획일성은 디자인적으로 최악이다. 모두 동일하다면, 거기엔 아름다움이 없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한다면 그것도 디자인이 아니다. 통일된 규칙성은 있지만, 변화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그게 난장이다.
작곡은 같은 리듬이 벽돌처럼 쌓여서 곡의 집이 완성된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리듬이 조금씩 변화를 주기때문이다. 같은 리듬이 음높이가 달라지면서 다르게 느껴진다. 처마에서 바닥까지 길이는 정해졌고, 그 길이를 2~3가지 방법으로 구분한다. 가령, 3000이라고 한다면, 2500+500, 2200+800, 2000+1000 3가지 스타일로 각각 잘라서 붙인다면, 가로선은 3개가 같은 높이에서 나타날 것이고, 전체적으로 본다면 불규칙하게 루바가 설치되어 보기에 좋다, 이런 이유로 루바 설치는 건축학적 디자인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사소한 디테일이 가치를 좌우하는 것이다.
– 뒤집히고 뒤집혀야 닭갈비에 양념이 스며든다.
우린 모든 작업을 마치고, 강릉 시내에 있는 춘천진미 닭갈비 식당에 갔다. 함께 일하는 직원이 안경테 수리도 할겸, 시내에서 식사를 했는데, 맛의 비결은 뒤집힘에 있었다. 아~~~, 인생도 그러한가? 뒤집히고, 뒤집히고, 뒤집히면서 비로서 마음에 깊이가 스미는 것일까? 인생에 가을이 찾아오는 것처럼 마음이 숙연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