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으니 가을스타일의 머리가 생각났다. 밥먹고, 나의 미용실로 걸음을 향했다. 벌써 가을이다. 낙옆보다 더 긴 머리카락 손질하기로 벌써 설레인다. 지오헤어는 경남호텔 맞은편에 있다. 나는 4~5년 정도 애용한다.
4달전 정미숙 원장이 그냥 기습적으로 ‘투블럭 스타일’ 머리를 권유하면서 새로운 유행에 머리 떠밀리듯 동참했다가, 오늘은 나의 본래 수더분한 그 머리스타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가을이 오면 계절이 물들 듯 세월에 물든 나의 흰머리도 염색을 결정했다.
웬걸, 정미숙 원장은 ‘염색과 함께’ 파마를 권유한다. 나는 파마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곱슬머리 정도로 내가 어린 시절 알고 있어서, 돼지머리처럼 정말 딱딱한 그런 파마머리 인상이다. 내가 살던 시골의 미용실에서 아줌마들의 파마를 너무 일률적으로 하다보니 내가 잘못 인식한 파마의 고정관념이다. 곱슬은 곱다는 뜻인데 곱지 않은 고불고불 머리스타일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자연스타일 머리를 고집했는데, perm은 알고보면 웨이브이며, 이는 곡선이다. 우리나라 조상들은 옛날부터 곡선에 강했다. 한반도부터 나라가 구부러져 있으며 태극기도 곡선이며, 표현력도 간접화법이 매우 발달해 있어서 ‘곡선의 유희’를 즐겼난 민족이다. 민족성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미용사들의 자부심도 ‘곡선’에서 출발함에 틀림없다. 머리카락에 흐르는 부드러운 곡선은 곧 물의 흐름과 같다. 그녀가 권유한 ‘파마’를 내가 받아드린 이유는 그녀가 정중히 권유했기 때문이다. 선뜻 내 마음이 곡선의 물처럼 흘렀다. 나도 지금과 또 다르게 새로운 변모를 할 수 있을까? 투블럭 스타일의 그 강한 이미지가 ‘여름’같았다면, 이제는 좀 부드러운 완숙의 미로서 ‘곡선’이 가능할까?
“믿어봐요. 제 손을 믿어봐요. 제가 감(感)이 아직 살아있어요.”라고 정미숙 원장이 직접 가위를 붙잡았다. 20년가량 미용사의 길을 걸어온 그녀는 가위를 잡고서 손님들의 머리를 만질 때가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사람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열정을 쏟을 때, 그때 태양처럼 빛이 난다. 내가 펜을 잡는 것과 그녀가 가위를 잡는 것은 동일한 열정이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머리를 예술로서 그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하도록 연출하는 것, 이것이 정미숙 원장의 미용철학이다.
거울에 비친 내 머리를 보니, 10가닥 정도를 돌돌돌 말아서 재봉틀 실타래처럼 묶는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중도 제머리 못 깍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요즘은 중들도 머리를 길러서 다니니, 중도 제머리 파마 못한다로 바뀌어야하나? 혼자서는 누구도 못할 예술적 감각이 필요해 보인다. 부드러움을 연출하기 위해서 팽팽한 긴장감의 묶음이 필요하다는 것, 革이 생각났다. 가죽을 부드럽게 하려고 팽팽하게 당겨서 말리는 것, 그처럼 돌돌돌 말아올린 머리위로 인공위성같은 열기가 돌아갔다. 아마도 머리카락을 돌돌돌 말아서 풀었을 때 탄성력이 붙나보다.
파마가 볶음밥처럼 그냥 볶는 것으로 알았던 내가 이러한 연출과정을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역시 사람은 알아야 한다. 말려진 머리틀도 정결한 질서로 각각 규칙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 하기사 실타래도 헝클어지면 그게 가장 보기 흉(凶)한데 하물며 머리카락이랴. 그냥 볶는다고 볶어질 머리일까? 평생 파마와 담쌓고 지냈으니, 나의 첫파마 머리는 어떨지 무척 궁금도 하다.
파마 따로 염색 따로이다. 머리가 팽팽히 당기는 느낌이다. 둔중한 무덤덤이 내 머리를 감싸고 있었으니, 지금은 꼭 침이라도 맞은 듯 시원해서 좋다. 거울에 싱그러운 남자가 날 쳐다본다. 늘 봤던 그 남자가 오늘은 보다 싱그럽다. 나의 나와 만남. 가볍게 윙크. 나는 내가 참 좋다. 새롭게 변화하는 것은 긴 겨울의 틀에서 봄이 꽃피는 것처럼, 무더운 여름의 태양위에서 열매가 영그는 것처럼 그렇게 탐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 미용(美容)은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얼굴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