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에서
건대입구에 내려서, 한참을 걸었더니, 건대 내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서울에 살면서 건대에 온 적은 몇 번 안된다. 늘상 어린이 대공원에서 돌아가곤, 돌아가곤 했었다. 오늘은 고3 담임교사 입학설명회가 있어서 일찍 도착했다. 오전 인터뷰는 시간이 엇갈려 무산(無産)되고….
나는 국민대를 졸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젊은 20대가 참으로 허무하게 지나갔던 것 같다. 진로의 중요성을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순천고등학교 3년동안, 어쩌면 동강중학교 3년동안 교사다운 교사를 만났던가? 많이 아쉽다.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금은 교육복지가 상당히 좋아져서, 학생들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진로상담이 보편화되었다. 참 다행이다.
국민대와 비교해보면, 아마도 건국대는 100배는 더 큰 것 같다. 엄청난 건물들을 지나서, 새천년관에 도착했는데 그게 국민대학교 2호관 건물과 비슷해 보였다. 국민대에서는 그게 제일 큰 건물인데, 건국대에서는 수백개의 건물중의 하나다. 건국대에는 중앙에 연못이 있는데 그게 국민대 전체 면적 정도 되는 것 같다. 국민대와 건국대는 규모에서 비교가 안된다.
건국대는 이름이 웬지 약간 옛날식이다. 하기사 단국대보다는 낫다. 단군왕검의 이미지가 짙은 단국대는 그 느낌이 고조선으로 이어진다. 내부에 들어가보면 전혀 다른데도 그렇다. 동국대도 불교 이미지가 강하다. 동국대 입학처에서 홍보하길 “동국대 식당에서 불고기가 인기 메뉴다”라고 했더니, 모두가 함박웃음이 터졌다. 종교와 학문은 별개인 것 같다.
나는 요즘 대학을 다시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부를 다시 전공하고 싶다. 법학과를 다니고 싶다. 한문공부에 매진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이란 생각을 했다. 게다가 법률 자체가 일제의 유산이어서, 지금도 매우 어렵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는 문법구조로 되어있다. 판사도 사실 그런 내용을 이해하긴 할까? 그들이 판결문을 쓸 때는 기존의 판례를 ‘드래그’로 붙여넣기를 하다보니, 스스로 창작하는 것은 단지 판결의 요지일 뿐이다. 참으로 아쉽다.
겨울이라서 모두 목까지 올라온 코트를 입고서, 학생들은 모두 지식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학은 대학이다. 나의 대학시절, 참으로 힘겨운 삶을 견뎌냈다. 유학생활이란 것이 쉽지 않다. 농촌이 고향이었던 나는 대학등록금도 부담이 되었다. 내가 벌어서 다녀보겠다고 작정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다. 장학금 혜택이 있었는데…. ROTC를 지원할 수도 있었는데…. 농촌소년의 유약한 성격이 언제나 빙빙빙 맴돌았다. 오늘 건국대를 와보니, 그때 그시절이 아련하다.
2016년에 수능이라도 한번 봐볼까? 3년 준비해서 봐볼까? 계획중이다.
요즘은 많이 편해진 것 같다. 영어도 절대평가로 바뀌고, 한국사도 절대평가로 필수과목이 되었고, 한문도 선택할 수 있으니, 대학별로 정시를 3개씩 쓸 수가 있고, ‘다’군을 선택하면 추가합격으로 합격률이 상당히 높고, 변수가 다양한 대학입학에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한 것 같다.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지만, 300억원이 넘는 금액이 각 대학마다 장학금으로 지원되고 있으니, 구호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 등록금은 대부분 무료다.
내가 학부에 다시 도전한다면, 가천대 또는 서울대를 지원하고 싶다. 혹은 인천대다. 인천대는 국립대이고, 국제외교분야로 접근하면 활동폭이 상당히 많다. 지금은 국제사회시대여서, 인천대는 인천국제공항옆에 위치하고 있고, 인천에 국제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서 대학과 국제기업간 MOU체결이 상당히 잘 되어있다. 그런 측면이 매력적이다.
가천대는 뜨는 대학이다. 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넓고, 졸업후에도 취직이 상당히 원활하다. 대학이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기회의 폭이 넓다는 의미다. 집이 부유하면 자녀들의 교육적 질(質)이 높아지듯이 대학도 경제적 여건이 중요하다. 가천대는 추천 1호 대학이다. 전과목 1등급이라면, 나는 가천대를 가겠다. 모든 미래가 보장된 곳이니, 그곳에서 가천대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가천대 법학과도 끌린다. 왜냐면 가천대 법학과 출신이 현재 서울변호사협회 회장이기 때문이다. 서울변협 회장은 대한변협회장의 직행코스다.
나는 농촌 소년이다. 겨울이 되면, 나의 아버지는 감자와 쌀을 창고에 쌓아두고서 1년을 회상했다. 그 얼굴이 넉넉해 보였고, 희망있어 보였다. 겨울은 추웠으나, 나의 아버지는 늘 얼굴에 봄의 희망을 꿈꿨다. 농부는 겨울이 되면 벌써 봄을 쳐다본다. 씨앗을 고르기 위해서 소금물을 담그는 모습이 나는 늘 떠오른다. 물속에 가라앉는 볍씨는 이듬해 땅에 뿌려진다.
씨앗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어쩌면, ‘진로희망사항’은 모두에게 씨앗같은 것이 아닐까? 배추씨, 고추씨 등등 내년 농사의 승패를 좌우할 종자를 선택해서 뿌린 다음에 모든 정성을 다하듯, 고등학교 3년동안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희망사항의 씨앗을 뿌린 다음에 그것에 몰두해서 거름을 주고, 병충해(게임, 나태함, TV)와 싸우면서 고3에 아름다운 추수를 맞이하는 것 같다. 나도 내년도 씨앗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