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박근영 칼럼니스트]=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았는가? 픽사에서 몬스터대학교 이후 2년만에 만들어 작년 개봉한 영화인데, 아이들 뿐 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꽤나 인기를 몰았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이 영화가 다소 밋밋한 극의 전개와 그다지 멋있지 않은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자극성에 길들여진 어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재의 참신함과 공감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머리속에 살고 있는 의인화된 감정’ 들.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마주하는 감정들이 그리고 그러한 감정의 변화가 당연하다고 다독이듯 말해주기 때문에.
요즘 나에게 딱 필요한 위로(慰勞).
나에게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다섯 명의 감정들보다 수천 배는 많은 감정들이 있다. 다정이, 명랑이, 사랑이, 음침이, 처량이, 근심이 기타 등등. 이런 감정들 중에는 늘 있었으면 좋겠는 것과 제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는데, 참으로 요상하게도 겨울만 되면 내가 싫어하는 감정들이 총출동 한다. 짐작건대, 내가 굉장히 감정선이 민감하고,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소음인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수족냉증과 함께 겨울마다 앓고 있는 병이 있다면, 바로 ‘계절성 우울증(憂鬱症)’이다. 봄이 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계절성 우울증이란 겨울철 일조량 감소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 질환으로,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멜라토닌이 일조량 감소와 함께 줄어들면서 느끼는 우울감이다. 일반적인 증상으로는 무기력감, 피로, 왕성한 식욕, 과수면 등이 있다.
때문에 보통 겨울철 나의 생활 패턴은 이러하다. 핏기 하나 없이 일어나 추위에 오들오들, 잔뜩 웅크린 채 움직임을 최소화 하며 출근했다가 퇴근할 때 쯤이면, 녹초가 되어 꽁꽁 언 몸으로 집에 돌아와 기절(氣絶). 그나마 급격히 떨어지는 당(糖)은 2시간에 한 번씩 사탕이나 군것질 거리로 채우며 보충. 그렇게 좋아하던 운동장은 쳐다도 보기 싫고, 주말에는 이불과 한 몸이 되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낸다. 추운데 나가야 하니 약속도 잡기 싫다. Damien Rice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우울의 절정을 찍을 때쯤이면 스스로가 한심스러울 지경이다.
뭐든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고, 해서 몇몇 의학 저널과 기사들을 뒤져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계절성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특히 여성 우울증이 남성의 2배 정도라고 하는데 사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겨울철이면 대부분 바깥 활동을 줄이게 되고 쉬이 피로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우울감이 아니더라도 뇌졸중(腦卒中), 면역력 저하로 인한 잦은 질병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예부터 겨울나기가 중요하다고 전하지 않던가!
올해 내가 시도하고 있는 겨울나기 방법들 중에는 꽤나 괜찮은 효과를 본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첫번째는, 차(茶) 마시기.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휴식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차 향이 가져다 주는 은은한 평화로움은 무기력함과 우울감을 다스리는데 매우 좋다. 요즘에는 따뜻한 기운의 홍삼, 계피, 생강 등을 우려낸 물을 물처럼 마시고 있는데, 조금 뜨겁다 싶을 정도로 해서 마시면 금방 몸이 후끈해지는 게 느껴진다.
둘째는, 족욕(足浴). 내가 앓고 있는 수족냉증(手足冷症)이란 병은 혈액순환 장애에서 비롯되는데, 족욕을 꾸준히 해 온 친구가 소개해 줘서 올 봄부터 시작한 이후로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하고 있다. 자기 전 약 70도 정도 되는 물에 본인 취향에 맞는 족욕제나 아로마 오일을 소량 넣고 발을 조물조물 마사지 해주면 피로도 풀리고, 수면 장애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
마지막은, 역시 운동. 하루 30분이라도 꾸준히 운동하길 권한다. 물론 운동 가기 전에는 ‘밖이 추운데 오늘만 쉴까?’, ‘피곤한데 내일하자.’ 기타 등등 엄청난 갈등과 유혹에 발을 떼기 어렵지만 끝내고 돌아오는 길엔 늘 ‘역시 잘했어.’ 라는 생각이 든다. 정 나가기 싫다면, 실내에서 하는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요가만으로도 괜찮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의 세 가지 방법이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찾아보면, 식이요법부터 민간요법, 체질별 운동법까지 수 많은 겨울나기 방법이 있으니 각자의 취향과 체질에 맞는 방법을 터득하여 올해 겨울도 건강히 나길 바란다. 봄의 새싹을 틔우기 위해 조용히 그러나 참으로 열심히 얼어붙은 대지의 수분과 영양을 모으고 있는 겨울날의 나뭇가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