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시를 잊은 그대에게 ]
중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준비하며 나는 이따금 궁금해 하곤 했다. 왜 국영수 과목 중에 ‘국’ 만이 성문종합영어나 Grammar in Use, 수학의 정석과 같은 바이블 교재가 없는지. (지금도 이러한 교재들이 바이블로 통용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 선배들, 친구들에게는 없으면 안되는 그야말로 ‘바이블’과 같은 교재였다)
명확한 풀이 과정이 없고,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문학의 특성을 고려해봤을 때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문학만이 답이 없을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이 허용되는 유일한 학문이지 않은가. 아무리 노력해도 수리, 외국어, 과탐, 사탐과는 전혀 다른 촉. 공감력과 감수성을 요구하는 이 아리송한 학문때문에 수능 전날까지 오르지 않는 언어 영역 점수로 애 끓이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만약 문학 교재의 바이블이 있다면, 시는 실력편 또는 Grammar in Use 의 Advanced 편에 담기지 않을까 싶다.
글자는 몇 글자 되지도 않는데 당최 이해하기 힘든 화자는 이렇다 저렇다 할 설명도 없이 불친절한 말만 쏟아낸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와 꽃의 의미를 글자 그대도 해석 했다간 김춘수 시인의 ‘꽃’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읽어 나가는 한 글자 한 글자와 화자가 그려내는 시상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담아 곱씹어야 비로소 그대를 ‘꽃’ 이라 부를 수 있다. 그나마 이정도는 괜찮다. 시인 이상의 작품은 이것이 시가 아니고, 이상의 작품이 아니라 한다면 어느 미친놈의 중얼거림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필명 한 번 기가 막히지 않은가. 참으로 이상하고 이상스럽다.
그래서 그런가? 소설이나 수필을 들고 다니는 이는 많지만 시집을 들고 다니는 이는 드물다.
내가 처음으로 손에 쥐었던 시집은 천상병 시인의 전집이었다. 청록색 표지에 숱 몇 없는 노인이 담배를 문 사진이 함께 있던 그 책은 아버지의 것이었는지, 그 누구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우연히 손에 들어 온 그 책이 처음에는 행간도 넓고 한글과 한문이 뒤섞여 빼곡한 여타 책들과는 달리 듬성듬성 몇 자 적혀있는 모양새가 좋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말들에 이내 내려놓고 몇 해가 지났다.
그 책을 온전히 읽을 수 있게 된 건 대학교 때였다. 시인의 감성을 받아들일 만큼의 감성을 내가 갖게 되고, 천상병 시인의 삶에 대해 이해하게 되며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라는 글귀에서 청록색 푸르름을 느꼈다. ‘돌아가리라’ 라는 다섯 글자에 담긴 그 결연함과 절절함, 삶의 회귀에 대한 순응과 같은 감정들의 깊이까지. 그렇게 시의 참 맛을 알게 되었지만 시의 너무 진한 감정 때문인지, 아니면 시인과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오랜 시간과 노력 때문인지 나도 일 년에 시집 몇 권 읽기가 힘들다.
그러다 얼마 전 발견한 정재찬 교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 를 읽고 이렇게 재미있게, 쉽게 시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죽인 시인의사회 키팅 선생을 언급하며 다양한 이유로 사랑과 낭만, 아름다움 그리고 시를 잊고 지내는 모두를 위해 책을 냈다는 그의 강의는 한양대학교 최우수 교양과목으로 선정되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는 강의 내용을 엮어 사랑, 슬픔, 기다림 등의 몇가지 주제로 재구성 된 책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학생들이 왜 그의 강의에 뜨겁게 호응했는지 자연스레 이해가 간다.
일단, 정재찬 교수는 불친절한 시와는 다르게 매우 친절한 교수님인 것 같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지식, 예를 들면 시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는 시인의 삶, 사랑, 가정환경 등을 이야기꾼처럼 재미있게 또 세세하게 설명해주며 시의 행간을 채워준다. 김춘수 시인이 아내와 사별한 뒤 오랜 기간 외로움에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과 후에 <바람>, <거울 속의 천사> 와 같은 작품들에 대한 이해는 천양지차인 것처럼 말이다.
또 그는 시를 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대중가요 등 우리에게 보다 친숙하고 편안한 영역으로까지 넒힘으로써 시가 주는 막연한 느낌을 없애고자 노력했다. 가사가 아름다운 대중가요를 시로 해석한다거나 시가 쓰인 시대와 동시대의 소설, 또는 비슷한 주제의 영화, 그림까지 함께 소개하며, 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그 재미가 또 상당하다. 팔색조 같은 시의 매력에 학생들이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하다.
게다가 유능한 라디오 DJ 처럼, 소개하는 작품들이 너무 생소하거나 어렵지 않고 하나같이 아름다워서 빌보드 차트를 듣는 것처럼 대중적인 편안함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너무 고상한 클래식도, 매니아적인 헤비메탈도 아닌 딱 적당한 정도의 시를 읽으며, 시가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그의 섬세하고 자상한 마음이 느껴진다.
만약 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거나, 입시 시절 꾸역꾸역 외웠던 한시(漢詩)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는 당신이라면 나는 자신 있게 ‘시를 잊은 그대에게’ 를 추천하겠다. 이 책은 정재찬 교수가 오랜 기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습득한 노하우와 지식을 축약한 시의 바이블 같은 책으로 문학의 입문자도 마스터도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읽는 내내 나는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분하다 싶을 만큼 좋은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정재찬 교수의 강의를 듣는 행운을 가진 한양대학교 학생들에게는 유치하지만 부러움의 시기까지 느꼈음을 고백하며, 서평을 마친다.
* 저자 정재찬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문학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시의 이념과 논리》, 《문학교육의 사회학을 위하여》, 《문학교육의 현상과 인식》, 《문학교육개론 1》(공저), 《문학교육원론》(공저) 등이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수차례 집필하고 미래의 국어교사들을 가르쳐온 그의 수업 방식은 특별하다. 흘러간 유행가와 가곡, 오래된 그림과 사진, 추억의 영화나 광고 등을 넘나들며 마치 한 편의 토크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 그는 시를 사랑하는 법보다 한 가지 답을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워온 학생들에게 시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돌려주고 싶었다. 매 강의마다 한양대학교 학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최우수 교양 과목으로 선정된 ‘문화혼융의 시 읽기’ 강의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교수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다.” 오늘도 그는 키팅 교수가 되기를 꿈꾸며 시를 읽는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