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의 4사람, 박근혜 김무성 문재인 안철수
20대 국회, 삼각형의 견제장치(더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

조선일보 2016. 4. 15. 1면 표지사진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413 총선의 후폭풍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입당의사를 밝혔고, 즉각 복당 허용을 서로 확인했지만, 총선결과 더불어 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무소속 11석, 정의당 6석의 성적표는 불변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1년 10개월이나 남았는데, 레임덕에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박근혜 대통령으로서 국회진입에 ‘이정현 카드’ 외에는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정현 카드가 과연 새누리당 입장에서 유리할까, 그것도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지는 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주 낯선 ‘대야’(大野) ‘소여’(小與)의 단어다. 물론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말은 자주 등장하지만, 이런 일이 실현된다는 것은 ‘서울시장’에 야당측 인물이 당선된 것처럼 이례적인 사건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야당인물(민주당)로서 안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처럼 국회에서 야당이 다수당을 선점한 것은 한국정치로서 엄청난 이변(異變)이다. 견제와 제동의 결과물이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으로서 원망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우리나라 정치현주소가 ‘통제’에 가까운 압력행사가 난무한지 보여주는 ‘성적표’가 아닐까? 민주주의 기본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와 균형은 삼각형처럼 서로의 꼭지점을 인정해주면서 존중받는다. 꼭지점 하나가 사라지면 그것은 삼각형의 평면이 될 수없고 선분에 불과하다. 새누리당 공천과정이 보여준 그 공천학살(公薦虐殺)은 권력의 횡포를 넘어섰다. 유승민 의원에 대한 ‘말려서 고사시키기’는 결국 ‘옥새파동’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새누리당의 권력 갑질에 신물이 난 부동층이 ‘새누리당이 아닌 인물중심’으로 옮겨간 것이 아닐까싶다.
정치인들은 지역주민들과 만나는 것이 만약 어렵다면, 드라마를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지상파 3사는 동시간대에 시청률을 경쟁한다. 대부분 10%로 나눠먹기를 하는데, 어떤 드라마는 급박하게 올라간다. 요인은 2가지다. 엄청난 배우가 출연하거나, 드라마 내용과 연출이 탁월하거나…. 태양의 후예와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과 일본을 뒤짚어버렸다.
드라마 한류는 제2, 제3, 제4의 한류상품을 파생하면서 관광산업의 새로운 창조경제를 일으킨다. 이런 드라마도 결국 3파전의 삼국지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아주 익숙한 고구려, 신라, 백제가 그러하다. 힘이 강력한 고구려와 문화예술과 전통성과 입지조건이 강력한 한강과 구석에 처박혀 겨우 태어난 신라, 세나라가 펼친 한반도 삼국지에서 과연 최후의 승자가 누구였던가, 첫째는 신라였고, 둘째는 고구려(고려)였고, 셋째는 고조선의 맥을 이은 조선의 ‘백제’였다. 조선이 백제의 명분이 있는 이유는 백제의 수도였던 한강유역에 수도를 정했기 때문이다. 권력층은 서로 자신들이 칼자루를 잡으려고 했지만, 역사는 입증하길 모두가 주인이게 기회를 준다. 견제와 균형으로 누구도 주인일 수 없고, 누구도 주인일 수 있는 이 오묘함의 이치를 추적하면, 정치인들은 드라마 시청률에서 정치인의 대변혁의 정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하기는 약간 그렇지만, 태양의 후예가 30%를 넘어섰을 때 SBS 돌아와요 아저씨도 인물배우가 엄청나다. 정지훈(가수 비)과 김수로가 출연하는 이 드라마는 배우들의 열정적 노력이 그냥 느껴지는데 시청률이 4%대다. 내용이 완전히 바닥이다. 영혼과 육체의 엇갈리는 운명을 인연의 쇠사슬로 풀어내는 것이 ‘우연의 일치’로서 엄청난 작품을 써낸 것 같은데, 시청자로서 공감을 가질 수가 없다. 드라마를 위한 드라마라고 할까? 반면, 태양의 후예는 의사와 군인의 만남을 통해서 지금 한창 문제시되는 국제사회의 공조문제를 밀도깊게 다뤘다. 지구공동체로서 ‘미워했던 원수가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드라마의 속살인가?
왜 정치는 드라마로서 가치를 준수하지 않을까? 공천은 드라마의 연출과 같다. 도대체 KBS 사장이 KBS 드라마 연출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가? 연출은 연출감각이 있는 연출PD의 몫이다. 간혹 KBS 사장이 인맥을 동원해서 밀고싶은 어떤 배우를 추천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배우들을 지목하는 것은 드라마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이번 새누리당 공천 드라마는 연출PD가 아닌, 사장의 위치에 있는 청와대가 직접 개입해서, ‘친박’의 인물들로 대거포진해서 413공천 드라마를 연출했으니, 과연 시청률이 오를 수 있겠는가?
더불어 민주당 123석은 12.3% 새누리당 122석은 12.2%, 국민의당 38석은 3.8% 무소속 1.1%, 정의당 0.6%의 당선 시청률이 정치드라마의 현주소임에 틀림없다.
루비콘강을 선택한 ‘안철수’의 머리밀기의 결단으로서 ‘민주당 탈당’의 과감한 결단은 정치드라마로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종편채널과 같은 국민의당이 3.8%의 시청률을 올린 것은 엄청나게 선전한 것이다. 과반수 150석에 더불어민주당도 새누리당도 넘지 못하고, 특히 2/3에 해당하는 180석에는 어느 누구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모두가 협력해야만 민생법안이 통과되는 ‘견제와 협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주 초라한 빨간 새누리당 당옷을 입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초췌한 모습(조선일보 2016. 4. 16. 1면)은 새누리당의 지금 모습을 보여준다. 벼랑 끝에 몰린 새누리당이고, 세월호처럼 서서히 몰락하는 지금 새누리당의 선장은 누구인가?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 당은 또한 어떻게 앞으로 한국정치를 풀어낼 것인가? 검찰은 현재 진경준 검사의 120억대 주식 특혜 매입의혹의 부담감을 안고 있어서, 부정선거에 대한 검찰수사도 무리하게 추진할 동력이 상실된 상태다.
문재인 前대표는 어떠했는가? 모두가 반대하는 호남에 방문해서 벼랑 끝에 내몰린 ‘피붙이로 내던짐’을 스스로 경험하면서 ‘광야의 야생화처럼’ 십자가에 메달렸다. 호남은 안철수를 선택하면서 다시한번 문재인에게 충격을 줬으니 이 또한 감동이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정치는 모든 백성이 주인이며, 그 권력의 근원지는 백성임을 각인시키는 ‘총선 성적표’이다.
정치인들은 간혹 백성을 ‘소’(牛)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은 백성의 소유물인데, 전근대적 발상에서 비롯된 권력의 속성은 ‘왕의 소유물’이다. 황소가 힘이 세지만 사람의 말을 듣는 이유는 코뚜레와 고삐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간혹 권력의 황소에 코뚜레를 하고서, 이랴 저랴 하면서 백성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백성은 더 이상 우경(牛耕)의 황소가 아니다. 백성은 민주주의 제도에서 정치의 주권자이며,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모두 국민의 심부름꾼이 지나지 않다. 이것을 그 누가 알까? 어떤 측면에서 관료들이 일잘하는 황소가 되어야한다. 주객이 전도된 것은 ‘주인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으냐의 착각 때문이다. 권력은 백성의 것이다. 더불어 민주당과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에게 입법부 권력이 나눠진 삼각형 구도의 20대 국회는 누구도 주인이지 못하게 하는 독특한 ‘권력견제로서’ 백성이 주인인 ‘협력의 정치’가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역시, 청와대도 입법부의 권력을 독점하지 못한 것을 통해서 ‘민주주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립의 가치를 준수하는 행정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