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따뜻한 말 한마디]
일년 중 가장 의미 있고 감사한 날. 어버이날이다.
늘 함께하는 부모님 외에, 이제 외조모님 한 분 덜렁 남아계신 나로서는 좀 더 많은 카네이션을 달지 못하고 먼저 떠나가신 조부모님들 생각에 아쉽기도 서운하기도 한 그런 날이다. 유난히 예뻐했던 손녀가 달아주는 카네이션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 지 알기에.
조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는 그분들의 뒷모습이, 잔주름이, 얼마나 커 보이고 든든했는지 모른다. 세월에서 묻어 나오는 넉넉함과 여유, 지혜가 아름다운 노년을 그리게 했다.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 더 나이가 먹고 두어 달에 한번 꼴로 입원을 하는, 누군가의 돌봄 없인 생을 이어가기 어려운 때가 되니 더 이상 커 보이지도 든든해 보이지도 않는다. 진정으로 늙는 다는 것, 나이 먹는다는 건 결코 아름답지 않다. 삶의 끝자락이 주는 고독함이 남을 뿐이다.
늘 목에 메고 다니는 효도폰 단축번호 12번에 손녀의 전화번호를 저장한 후로, 할머니는 하루에 한 번 꼴로 전화를 주신다.
“응 그래, 그냥 해 봤어. 어디니?”
별다른 용건은 없고, 그저 손녀가 어디에서 무얼하는 지가 궁금해서 걸어보는 전화는 사실은 손녀가 내 안부를 물어주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이제 밖에 나가 일을 하지도, 친구를 만나지도, 여행을 가지도 못하는 하루에 카랑카랑한 손녀 목소리는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전화 목록을 보면 발신번호 목록에 친구, 회사 동료, 식당, 미용실, 기타 등등 잡다구레한 번호들과 심지어 114까지 있어도 할머니 번호는 뜨문뜨문 보이는 걸 보면 내가 참 불효를 하고 있구나 싶다. 수신번호에 여러 번 남아 있는 할머니라는 글자를 보니 더욱 그렇다. 마음이 아리다.
오늘 아침 어버이날을 맞아 무릎에 생긴 염증으로 또 병원에 입원하신 할머니를 만나러 카네이션을 사 들고 찾아갔다. 여지 없이 손녀를 보자마자 반가운 손 인사와 어디 갈까 연신 침대 매트를 두드리며 앉으라 시늉하는 할머니 곁에서 방글방글 이런저런 이야기 한 보따리 풀어 놓는 모습을 보니 또 뉘우치게 된다.
할머니가 원하는 건 해외여행 선물도, 큰 용돈도, 맛있는 저녁 식사도 아닌 그저 손녀가 할머니를 찾아준다는 것. 안부를 묻는 것 임에도 나는 그 몇 분의 시간에도 인색했음을. “효(孝)” 의 의미를 깨치기 위해 공자, 맹자 논할 것이 아니라 그저 전화 한 통,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면 그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