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어서 재미있고 짠한 세계] / 박근영 칼럼니스트
그러니까 내가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일전에도 고백한 적이 있는 짝사랑 윤여정 씨와 그만큼 좋아하는 작가 노희경씨가 함께하는 드라마 정도면, 당연히, 마땅히, 응당 봐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냥 주연 배우가 싫었다. 그것도 그랬고, 내 인생의 드라마였던 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 를 좀 더 곱씹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디어 마이 프렌즈」 를 보지 않은 보다 솔직한 이유는 소재가 낯설어서였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낯설다’의 감정을 종종 ‘싫다’ 로 연결해 버리고 부러 외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가 딱 그랬다. 알고 싶지 않은 낯선 세계, 나이 먹은 사람들의 세계. 내가 알아서 뭐 하겠는가? 청춘이라는 예쁜 세계에서 버둥버둥 사는 것도 바쁜데 알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나이 먹은 사람들의 이야기 같지 않은 화사한 화면에 마구 돌리던 리모컨 채널을 멈췄다. ‘아, 이거구나..’ 하며 다시 채널을 돌리려는데 고두심 씨가 냅다 “썅!” 하고 욕을 하더니 머리채를 휘잡고 싸우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여기저기서 욕설이 난무한다. 대본에서 나온 욕이 아닌 생활에서 나온 것 같은 욕. 더 되고 걸쭉한 욕이 말이다. 와.. 아무리 공중파가 아니라지만 요즘에는 방송에서 저런 말을 해도 되는가 보다 신기해서 쳐다봤다. 그러다 연달아 2편 반을 봤다.
뭐랄까.. 계속 보다 보니 낯설지만 신기한 재미가 있더라. 또 마냥 낯선 얘기이지만은 않은. 너무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민망하긴 한데 속된 말로 능글능글 돌려 까지 않아 좋더라.
극 중 고두심의 엄마로 나오는 오쌍분(김영옥)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난봉꾼으로 속 꽤나 썩인 치매 걸린 남편의 어리광이 싫어 자주 윽박을 지른다. 남편이 쫓아올까봐 운전석에 앉은 유일한 젊은이 박완(고현정)에게 얼른 가자고 징글징글 하다고 보채는 가 하면, 제 정신이 아닌 남편에게 옛날 서운한 감정을 실어 은근히 구박 아닌 구박도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꼭 새침데기 우리 할머니 같았다.
잘 모르는 석기시대 역사 같은 얘기지만 이따금 할머니가 푸념하는 얘기를 건너들은 바로 훤칠하니 잘생긴 내 외조부는 목수 장인으로 돈 꽤나 벌며, 동네 처녀, 아주머니 할 것 없이 뭇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내 기억에도 할아버지는 송충이 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매가 상당히 잘생긴 분이었는데 혈기 왕성은 커녕 거동이 늘 불편해서 부축해 드리거나 휠체어 없인 이동하기 어려운 할아버지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점심마다 펄펄 새로 끓여 뚝배기를 식탁에 올리는 모양새가 다소곳하지 않고 툭툭 대거나, 이따금 할머니의 욕인 듯 욕 아닌 듯한 중얼거림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점심 임무를 끝내고 화려한 브로치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알록달록 레이스 양산을 챙겨 나가는 할머니를 보며 젊은 시절 까맣게 탄 속도 모르고 왜 저럴까, 할아버지가 참 안됐다 했으니 우리 할머니 나옥분씨도 내가 그런 줄 알면 세상 새침데기 여자인 천성 상 된 욕은 못했더라도 단단히 삐졌으리라.
이런 생각으로 노희경씨의 꽂히는 듯한 대사를 듣고 있으면, 가깝게는 나의 조모부 또는 주변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떠오른다. 그들도 저런 된 소리를 할까, 화장실 참는 일이 저 정도로 어려울까 하다 섬뜩한 감정이 올라온다. 내 부모님도 그리고 연달아 나도,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살게 될 인생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어제 드라마에서는 고현정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조용히 있어주지, 노친네들, 꼰대들이라고 온갖 욕을 쏟아내다가 마지막에 조희자(김혜자), 문정아 (나문희)에게 뛰어가며 독백하는 씬이 있었다. 그녀 말하길..
“…이모들은 뻔뻔하지 않았다. 감히 70평생을 죽어라 힘들게 버텨온 이모들을 어린 내가 다 안다고 함부로 잔인하게 지껄이다니. 후회했다. 내가 몰라 그랬다고. 정말 잘못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