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배 이름이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떠올리기 부담스럽고, 어떤 이에게는 가슴이 아프며, 어떤 이에게는 지겨운 단어가 되었다. 이미 이 두 문장만 보고도 이 글에 흥미를 잃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수많은 사람의 감정을 끌어내는 어휘는 그 자체로 역사적이다. 곱든 밉든 세월호는 이미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었다. 아니, 역사가 될 것이다.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의혹이 해결만 된다면 말이다.
작년 같았으면, 세월호와 도로통제를 엮는 것이 영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세월호는 바다에 빠졌고 도로통제는 도심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러나 올해는, 종로 일대를 지나는 버스기사가 ‘데모 때문에 도로가 통제됐어요!’라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세월호 집회를 욕할 정도로 익숙한 일이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왜 세월호 사건은 팽목항에서 마무리 되지 못하고 광화문 광장에까지 올라왔을까. 멀고도 먼 거리인데 말이다.
언론이 말하는 세월호 사건에 꾸준히 관심을 두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궁금할 것이다. 정부가 구조를 위해 애썼고, 유가족들에게 배상도 해준다고 발표했고, 만나주겠다는 약속도 했고, 여러 특혜도 주었고, 그들이 원하던 시행령까지 주지 않았나. 많은 것을 받은 유가족들은 자기들이 특별대우라도 받아야 한다는 것 마냥 오만하게 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을 점거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불공평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세월호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엇이 객관인가? 국어사전에 따르면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함.’이 객관의 뜻이란다. 세월호 사건에서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려면, 유가족의 편에도 정부의 편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만 봐도, 세월호 사건의 가장 주된 갈등이 유가족 VS 정부 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의지해서 사회를 파악한다. 세월호 사건 이전에나 이후에나 그랬다. 하지만 언론이 객관적인가? 여권 언론과 야권 언론으로 나뉘는 것만 보아도 언론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도 전혀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게 언론이다.
간단한 예로, 지난 16일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을 들 수 있다. 동아일보는 1면에 팽목항 분향소에 조문하는 대통령 사진을 실으며, 유가족들이 ‘항의의 의미로 팽목항 분향소를 폐쇄’했다고 전했다. 희생자 아버지가 지난 16일 5만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직접 말한 것을 옮기자면, 분향소가 안산으로 옮겨온 지 꽤 됐다. 유가족들 또한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당한 이후로 꾸준히 대통령을 안산 분향소로 와달라고 표현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대통령은 뜬금없이 팽목항으로 향했다.
흥미롭지 않은가? 나는 유가족의 이런 말을 들으며 나의 의견이 이런 언론에 의해 조종당해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업에 바쁘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언론이 가장 편리하다. 그런데 그런 언론이 사실에 근거하되, ‘약간’ 비틀린 정보를 주고 있던 거라면. 그 비틀림이 오직 정부에게만 유리하게 조작되어 있다면. 우리가 아무런 비판 없이 그런 정보를 흡수해온 것이라면.
앞서 소개했던,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정보들 -구조, 약속, 배상, 특혜, 시행령- 을 다시 정리해보겠다. 구조는 언론이 말한 정도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유가족 증언에 따르면 구조 당시 사고해역에 직접 다녀오는 인원이 하루에 대략 10명 정도였다고 한다. 900 여명이 정원인 배를 생각하자면 턱없이 모자란 인력이다. 유가족들이 사고해역에 가는 것 또한 방해를 받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구조가 실패로 돌아간 후, 대통령은 유가족들과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대통령은 유가족들과 만나지 않았다. 청와대 코앞에 있는 광화문 광장에 상주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유가족들이 다가가려하면 경찰에 의해 강제진압 당했다. ‘진압’이라는 단어를 써야할 만큼 유가족들이 위협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1년 내내 그래왔다.
또 정부가 발표한 배상과 특혜들. 유가족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정부가 대학 특례입학을 말해도 집에 대학을 갈 사람이 없었고, 돈을 말해도 집에 용돈 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만 언론을 탔고 유가족들의 거부는 조용히 지나갔다. 거기에, 배상액으로 발표한 8억 원의 액수는 정부 차원에서 제공하는 돈도 아니었다. 국민 성금과 보험금의 총합이었다. 교묘한 말장난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시행령. 유가족들은 독립적인 기구를 원했다.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도록 기소권과 수사권을 가진 그런 기구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시행령에서는 조사위원회 절반 이상을 공무원으로 두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 집안 식구가 그 집안의 비리를 찾아낸다고 한들, 공개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거기에 정부가 이미 조사했던 내용들만 조사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걸려있다. 어린아이가 훔친 돈을 뒷주머니에 넣고 두 손을 펴 보이며 ‘난 훔친 거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어디가 다른가.
이렇게 깊이 들어가야만 세월호와 도로통제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언론에게 배신당했음을 알고 팽목항에서 광화문으로 올라왔다. 광화문에서의 천막생활 1년. 바뀌는 것이 없었다. 당연하다. 언론이 대중과 세월호 유가족들을 분리하려고 애썼으니까. 그래서 유가족들은 세월호 1주기 집회를 기획했다. 언론을 통하지 않고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직접 말하기 위해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섰다. 적어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만큼은 왜곡 없는 사실을 들었다.
그리곤 국화를 들고 광화문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로 향했다. 경찰은 강경한 태도로 그들을 막았다. 필요 이상의 인력으로 필요 이상의 범위를 통제하며 불편을 초래했다. 아무런 무장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도 여럿 있었다.- 사람들은 그저 걸었다. 비켜달라는 호소에도 경찰은 해산만을 명령했다.
언론을 거친 거리의 사람들은 ‘폭도’가 되어있었다. 흰 국화를 들고 걸었고, 수 십 차례 비켜달라고 호소했던 긴 시간은 모두 생략된 채 경찰과 부딪히는 사람들의 모습만이 카메라에 담겼다. 그런 언론을 접해온 사람들은 버스기사가 말하는 ‘데모’를 듣고 세월호 집회를 욕하게 된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어떤 작가가 썼다.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다. 내가 복잡한 만큼 타인도 복잡하지만 우리는 쉽게 판단해버리고 만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언론은 대중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그런 단순한 판단을 하도록 분위기를 조장한다. ‘내’가 그렇듯이 온전한 악함으로, 오직 이기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세월호에 지쳐버린 사람들도 그렇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유가족들도 그렇다. 지친 이들을 향해 공감을 못한다고, 유가족들을 향해 그 쯤 했으면 그만두라고 비난할 필요가 없다. 각자의 입장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이해를 하려면 대화가 우선이다. 왜곡 없는 진짜 입장들 말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얼굴을 보고 얘기해주자. 당신들이 왜 아직도 광화문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언론을 벗어나 그들의 생 목소리를 들어보자. 유가족들은 여전히 광화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