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출장기, 박근영 칼럼니스트]=이번 출장은 긴장의 연속 이었다.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회의들이 걸려 있었고, 복잡한 일정 속에 행여 예기치 못 한 상황이 발생하여 일을 그르칠까 나는 11박 12일 간 예민 덩어리로 지내야만 했다.
고백하건대, 본디 성격이 그리 둥글지는 않아서 무슨 일을 하든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보고 움직이는 편인데 그러자면, 놓여 있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의 통제 가능 범위가 넓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통제가 가능하다는 건 잘 알고 익숙하기 때문에 대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이번 출장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 바였으니, 예민함이 극도로 치솟아서 병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내게 이번 출장지 멕시코는 미지의 나라였다. 살면서 단 한번도 경험한 적 없고, 비행기 착륙과 함께 외교부에서 연신 보내오는 여행 위험경보 문자 메시지가 내가 이 나라를 가늠하는 최초의 척도가 될 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잘 모를 때 가장 위험한 건, 경계도 무모한 도전도 아니라 선입견에서 비롯된 오판이다. 오판을 할 바에야 차라리 아예 몰라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배워가는 게 낫다. 이번 출장의 가장 큰 교훈이랄까.
내가 했던 첫 번째 오판은, 날씨에 대한 것이었다. 멕시코 하면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과 구릿빛 사람들만을 생각했던 나는 기내에서 입을 옷 한 벌을 제외하고는 전부 반팔, 반바지만 챙겼다가 우리나라 초가을 같은 쌀쌀한 날씨에 벌벌 떨며 다녔다. 생각보다 밤낮 기온 차가 컸고, 그나마 비상약으로 챙겨간 감기약 덕에 몸 져 눕는 일만은 면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의 성향에 관한 것. 남미 사람들은 무조건 흥이 넘치고, 정열적이고, 일하기 싫어할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선입견은 매번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특히 놀랐던 건 식당에서였는데, 테이블을 담당하는 서버가 어찌나 빠릿빠릿 한 지 음식이 비워짐과 동시에 접시를 치워가는 바람에 난감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아, 이 식당만 유별난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 식당,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매번 느끼는 사람들의 성실함에 근면성실의 표본 우리나라 못지 않구나 놀라웠다.
레스토랑 얘기를 하다 보니 식사 문화의 차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생각이 나는데, 현지 임원과 회의 일정을 잡을 때였다. 몇 번의 이메일이 오고 가고, 6시쯤 회의를 하자는 임원의 제안에 으레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이야기구나 싶었다.
그래서 한참을 적당히 얘기도 나누면서 격식도 있는 레스토랑을 찾고 있는데, 알고 보니 멕시코의 일반적인 저녁 식사는 8시부터였고, 그 임원의 의중은 오히려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보다는 빨리 회의를 끝내고 집에 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정말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더 많은 문화 차이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었지만, 까딱 잘못하다간 서로 난감할 상황을 만들 뻔했다.
약 11일간의 출장 이후에 돌아와서 정리해 보니, 더 많은 이러저러한 일들도 있었고, 아쉬운 것 투성이다. 만약 다시 18시간이 넘는 비행과 경유, 수 많은 공항 검색대, 입국심사 기타 등등의 긴 여정을 거쳐 멕시코에 가게 된다면, 덜 예민하게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보이는 것, 느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멕시코를.
아, 그리고 예민 덩어리 나와 함께 동행해 준 고마운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