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과 베토벤이 들려주는 성동고 진로 멘토링**
죽(粥)은 쌀(米)을 약(弱)하게 만들어서 부드러움으로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한류대표 음식이다. 어쩌면 음악이 ‘죽’(粥)처럼 부드럽게 사람의 마음속에 스미면서, 좌절의 바닥에서 일어설 힘을 주며, 슬픔의 비를 피할 우산이 되게 해준다. 조윤미 죽이야기 음악감독이 들려주는 사연있는 음악이야기는 죽처럼 ‘힐링의 매력’이 숨어있었다. 서울교육방송이 그 현장에 함께 했다. / 편집자주
[서울교육방송 현장탐방]=무한경쟁의 시대, 좌절의 쓴잔을 블랙 커피처럼 마시는 현대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는 마음의 위로이다. 성동고등학교에서 진행된 ‘중구청과 함께 하는 조윤미 음악감독(죽이야기)의 힐링 콘서트’를 취재하면서, “진로멘토링”을 받듯, 힐링이 되었다. 자연의 숲속을 거닐다가 산 정상에서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그녀는 음악을 통해 관객 모두가 ‘각자 자신의 산봉우리’에 서게 하는 화술의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ONLY”를 외치게 했다. 오직 내가 가장 하고싶은 바로 그것, 그것에 대한 열정, 조희연 교육감과 교육부와 서울대학교 입학사정관제도(학생부종합전형)이 주장하는 바로 진로와 전공적합성이다.
“피아니스트 조윤미입니다. 성동고 학생들은 역시 액티버티하네요. 피드백이 정말로 빠르고 확실하네요. 고등학교 2학년입니까?”
큰 누나처럼, 차분차분 말하는 어조에는 음악가답게 어조의 톤을 가장 알맞게 조절하는 듯 했다. 묵직하고 클래식한 콘서트 취재만 했었던 경험에 비쳐서, 떠들썩하고 점심을 먹는 오후 1시의 고등학생들과 어떻게 콘서트를 진행할까, 몹시 궁금하기도 했었다. 객석 전체를 내다보는 통찰력은 대단하다.
짧게 질문을 던지면서 반응을 뒤쪽과 앞쪽을 함께 살피면서,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타듯이 본론에 바로 진입한다. 러시아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음악인으로서, 난해한 전문용어들을 섞어가면서 할 수도 있겠으나, 그녀의 대부분 강의는 학생들이 알아듣기 쉬운 단어로 구성되었다. 네모처럼 생긴 물건이 찍힌 사진을 보이면서 “무엇이냐”고 묻는데, 두부처럼 보였으나, 좀 더 딱딱한 느낌은 빨래비누 같았다. 학생들도 상당수 “빨래비누”라고 대답했다. 우리나라 빨래비누가 그곳까지 수출(?) 그런데, 정답은 ‘치즈’였다. 러시아인들이 즐겨먹는 음식중 하나이다.
바하 칸타타, 슈만의 곡이다. 조윤미 피아니스트는 이 곡으로 콘서트의 문을 열었다. 달의 여인 보보심경, 또는 구르미 그린 달빛의 드라마처럼 그녀의 음악 이야기는 절벽처럼 변곡점이 뚜렷했다. 평범한 인생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극적인 효과로서 관객을 사로잡는다. 슈만에게 찾아온 인생의 극단적 어려움은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아버지의 죽음이다. 문학가였던 아버지밑에서 평온하게 살았던 슈만은 16세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쩌면, 성동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것이다. 청중은 정말로 고요해졌다. 슈만은 아버지처럼 문학가로서 재능이 있었고, 피아노에 대한 재능도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슈만의 안정적인 직장을 생각하며, 법률가의 길을 걷게 한다. 어머니가 원하는 진로를 선택한 슈만의 인생은 지금 고등학생들에게도 일어나는 실상이다. 음악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청중의 현실적 문제로 다가가자, 대부분 성동고 학생들은 눈과 귀를 바짝 열고서 경청한다.
“법학을 전공하면서 몰래 피아노 레슨을 받다가 어머니께 들켰다”
어머니는 단호하게 슈만을 다른 대학으로 편입했고, 그곳에서도 슈만은 피아노 레슨을 몰래 배웠다. 레슨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비크’이다. 슈만의 어머니는 비크 선생을 만나 단판을 짓겠다고 찾아갔다가, 오히려 설득을 당하고, 슈만은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걷는데…. 그에게 2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바로 손가락 파열이다. 얼마나 처절하고, 절망적이었을까? 너무 많은 연습 때문에 손가락이 파열돼,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녀는 ‘마음을 울리는 힐링문장’을 던졌다.
“슈만은 손가락을 잃었고, 좌절의 밑바닥에서 그는 문제를 위기로 극복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문학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재발견했고, 그는 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음악전문 잡지를 창간하면서 2명의 무명 음악가를 세상에 소개합니다. 그 2명이 바로 쇼팽과 브람스입니다.”
하늘은 맑거나 흐리거나 비가 내리기 마련이다. 누구나 좌절의 쓴잔을 마셔야한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추락의 고통처럼, 인생이라면 누구나 슬픔의 비를 피할 수가 없다. 문제를 봉착했을 때, ‘피붙이로 내던져짐’의 철학적 질문처럼, 인생은 그때 비로서 ‘자아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조윤미 음악감독은 “잘하는 것보다 진정 하고싶은 그 길을 걸어가라”고 조언했다. 법률가로 살았을 수도 있었던 슈만이 자신이 진정 하고싶은 음악의 길을 걷게 되면서, 손가락을 잃었어도 좌절하지 않았던 것은 ‘하고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었고, 음악평론가로서, 언론인으로서, 음악인재를 발굴하는 교육사업까지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손가락을 잃어 피아노를 칠 수 없지만, 작곡가로서 다른 음악인들의 손가락을 통해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슈만과 함께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슈만과 베토벤의 공통점은 ‘좌절과 진로’에 대한 것이다. 인성교육(人性敎育)은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품성 교육을 말한다. 조윤미 감독은 “남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고 조언했다. 베토벤은 알콜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가정폭력을 당하면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싫어서 집을 도망친 가출청소년이었으나, 멘토 네페를 만나면서 그의 운명은 달라진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그 두려움을 담은 곡이 바로 ‘비창’이다.
조윤미 감독은 드라마틱하게 설명하면서 바로 그 곡을 연주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어떻게 폭발하는지 그 손가락끝에서 전율하고, 피아노 자체가 흔들리는 듯 했다.
“너는 너만의 것을 발견하렴. 가장 너다운 것, 너가 가장 원하는 것, 너만의 것을 발견하렴” (네페 선생이 베토벤에게)
베토벤의 아버지는 베토벤을 ‘제2의 모차르트’의 틀에 가뒀지만, 그 족쇄를 끌러준 인물이 바로 네페 선생이다. 베토벤은 그때부터 누군가의 인생속에 갇히지 않고, 본인이 진정 하고싶은 그 일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28세에 베토벤은 청각을 잃었고, 짝사랑하던 귀족여인 귀챠르디로부터 결별통보를 받게 된다. 절망의 깊고 깊은 바닥에서 지은 곡이 바로 ‘월광 소나타’이다. 베토벤은 월광 소나타를 지을 때, 소리가 들리지 않아 피아노 음을 하나하나 쳐가면서 지었다고 하니, ‘하고싶은 길을 걷는 열정’앞에는 어떤 장애물도 징검돌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사연을 듣고서, 월광 소나타를 들으니, 그 절망감과 함께 비통한 심경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느낌으로 들려왔다. 음악속에 작곡가의 설움과 애환이 담겨있으니, 어쩌면 조윤미 음악감독은 미술관 큐레이터처럼, 경복궁 문화 가이드처럼, 음악작품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귀가 먹었다는 것, 불통의 관계단절에서 베토벤은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지금까지도 인류가운데 소통하며 호흡하고 살아있으니, 음악의 감동은 시간을 초월하는 듯 하다.
*** 취재후기 ***
모든 콘서트가 끝나고, 조윤미 음악감독은 빈종이에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서, 학생들의 진솔한 질문은 즉석에서 답변했다. 모두 익명으로 질문을 적어서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었는데, 학업에 대한 부담감, 진로에 대한 갈등, 사람들과 단절로 인한 어려움, 유학을 가는데 필요한 준비사항 등등 다양했다. 사람들과 단절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서 조윤미 감독은 슈만과 베토벤의 일화를 들어서, “친구들과 단절되었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군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내가 무엇을 못하는지, 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급선무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듯, 주변과 단절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소통하고, 자아 정체성을 찾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조윤미 음악감독의 교육 멘토링은 ‘나를 찾는 것’ 즉, ‘자아 정체성 확립’이었다. 화살이 손끝에서 과녁을 향하듯, 내가 나를 아는 것, 모든 교육의 핵심이고, 출발점임에 틀림없다. 생기부(학생생활기록부)란에 적는 ‘흥미와 진로’가 모든 교육의 가장 중요한 방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