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박근영 칼럼니스트]=점심시간이 되면 운동복을 챙겨 들고 나가는 그녀. 자꾸만 살이 찌는 것 같다고 돼지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늘 불안해 하며, 밥을 먹을 때도 꼭 절반만 숟가락으로 갈라 먹는 그녀와의 회식에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1차로 갔던 마포 어느 태국 식당에서 우리는 셋이 요리 넷을 시켜 꽤나 먹었다. 거기에 각자 맥주 두어병씩. 흥이 오르자 직장인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코스. 기름진 육고기에 소맥이 생각났고 그 길로 근방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양꼬치 집으로 달려갔다. 이미 1차에서 ‘배부르다’를 연발하던 그녀는 어디 가고 손에 든 고기를 야무지게 뜯고 있는 새로운 그녀가 나타났다. 거기에 양꼬치 집 가는 길에 산 생크림 범벅의 무지개 색 케이크 바닥까지 긁는 그녀. 결국 급체(急滯)로 새벽 응급실 행(行)을 시도해야만 했던 그녀다.
밥배와 디저트 배가 다른 여자라면 너무나 공감할 만한 이 이야기는 비단 여자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자꾸 나오는 아래 뱃살에 스트레스 받는 김대리. 벨트의 끝이 연차가 쌓일수록 멀어져 감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이 과장. 후덕해진 얼굴에 기름이 반지르르한 최 부장까지.
늘 시간과 일에 쫓기는 현대 직장인들은 일 잘하는 돼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특별히 육식을 좋아하지도 탄수화물 덩어리 밥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정말 정말 끊을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케익. 왠만한 디저트 맛집은 다 가 봤을 정도로 케익을 좋아하는 나는 정기 맛집 탐방 모임이 있고, 그들과 웃으며 먹는 재미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나 크다.
포크 위 달고 부드러운 그것이 쓴 진한향의 커피와 함께 입술을 스쳐 혀위에 앉았다, 목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만큼은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한 번의 만남에도 우리는 약속 장소를 서너개씩 잡는다. 밥. 커피. 디저트 맛집 이렇게.
회사를 다니다 보면 살이 찐다는 진리를 허벅지에서 걸려버린 청바지 몇벌을 눈물로 보내고 깨달은 이후부터는 그렇게나 좋아했던 케익을 끊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그럴때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된 회사생활에서 날 순간적으로 행복하게 해줄 가장 쉽고도 간단한 방법이 바로 먹는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보다 과학적으로는 식욕을 조절하는 인체의 코티졸과 세로토닌이 스트레스에 따라 증감하여 식욕을 상승 시킨다고 하는 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중요한 건 우리가 계속해서 먹고 있다는 것 뿐.
얼마나 쉽고도 행복한 일인가. 먹는다는 건. 시간을 포함한 유무형의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봤을 때 이만큼 효과적인 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TV 에도 온통 먹는 방송뿐이다. 마치 ‘더 먹어 더 먹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담배나 마약을 할 순 없는 선량한 현대인들을 홀리는 것 같은 ‘대국민 먹기 캠페인’을 보고 있으면 우린 점점 일 잘하는 스트레스가 많은 돼지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먹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을 찾은 건 아니다. 그저 인체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먹는다는 행위가 다른 목적으로 변질 되었다는 사실과 점점 두툼해지는 지방(脂肪)으로 둔해진 일 잘하는 동료들이 늘고 있음을 전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