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만추야’는 ‘늦가을 밤’이다. 가을 추(秋)와 저녁 석(夕)이 붙으면, 추석이 된다. 가을밤엔 보름달이 떠올라서 모두의 마음에 넉넉한 행복이 풍년들게 한다. 저녁 석(夕)은 달 월(月)을 약간 비스듬하게 그려놓은 상형글자이다. 저녁보다 깊어지면, 밤이 된다. 夜는 옷 의(衣)와 사람 육(月)이 합쳐져서, 이불덮고 잠을 자는 사람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밤은 곧 잠자는 시간이다.
나의 지금 시간은 만추야, 밤 9시 06분이다. 54분 후에는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여주인공 ‘최지우’의 법률사무장(오늘은 변호사가 됨)의 활약을 지켜볼 것이고, 늦가을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사람으로서 마음의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면서 깨닫는 월요일이었다. 가을이 가고 있음에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다시 보니 온통 낙옆이 물들어서 가을을 예고하고 있었다. 정치도 이제 변혁을 대비할 레임덕의 초겨울인가싶지만, 매서운 정치의 소재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늦가을은 감정이 부족할 지경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단어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신선한지, 단어는 곧 사람처럼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의 생각과 대화하고, 과거를 정리정돈하거나, 미래를 향한 망원경까지 준다. 단어는 친구처럼, 때론 가족처럼 친밀하다. 오늘의 새로운 단어는 만추야(晩秋夜)였다.
글쎄, 늦가을이 이렇게 일어나 떠나고 있음에도 나는 몰랐으므로, 불현듯 추수려보니 중년의 나이는 이미 늦가을임에 틀림없다. 농부의 가을은 봄, 여름의 땀방울이 축척되어 그 결과를 시험성적처럼 받아보는 시기인데, 나의 가을성적표는 나를 대면할 것이다. 인생, 두 단어는 언제나 나에게 묵직함으로 엄습하고, 거울앞에서 내가 나를 쳐다보듯 내가 감당해야할 내가 걸어온 과거와 현재와 또 미래의 발자국들에 대해서, 나는 오늘도 생각하였다.
나의 후회없었음은 언어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다시 젊음의 태양이 열정적으로 나에게 다가오더라도, 나는 나의 두 발이 흙탕물에 빠질지라도 현장속에서 사건을 목격하며, 강물에서 그물질하는 어부처럼 ‘생동감있는 단어’를 건져내길 고집할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고, 또한 사람을 새롭게 만날 것이며, 내가 나를 만남에 있어서도 매일 새롭길 고집할 것이다. 다시 없는 이 아름다운 시간의 보석위에서 빛나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더 무엇을 바랄 것이 있겠는가? 오늘도 맛있는 밥을 느끼며, 식사할 시간의 여유가 있었음은 그것이 행복이었다.
* 늦을 만(晩) 태양빛이 사라지는 때
늦을 만(晩)=해 일(日) + 면할 면(免)
늦을 만(晩)은 태양과 ‘벗다’(면하다)의 합성이다. 햇빛이 면한다는 의미는 ‘햇빛이 사라짐’을 말한다. 免은 토끼 토(兎)에서 꼬리가 없는 글자로서, 토끼가 덫에 걸렸다가 꼬리를 자르고 도망쳤다는 의미이며, 이는 생명을 건졌다는 뜻이다. 결국, 晩은 태양이 토끼처럼 도망쳤다는 의미이므로, 저녁의 황혼을 뜻한다. 저녁에는 태양이 노을을 남긴채 서산으로 도망친다.
# 晩을 포함한 단어들
晩餐(만찬) 저녁식사
早晩間(조만간) 멀지 않아
晩秋(만추) 늦가을
晩婚(만혼) 늦은 혼인
晩年(만년) 인생의 황혼
晩成(만성) 늦게 이뤄짐
李承晩(이승만) 초대 대통령
大器晩成(대기만성)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짐
晩時之歎(만시지탄) 늦은 때의 한탄
晩秋佳景(만추가경) 늦가을의 아름다운 경치
晩食當肉(만식당육) 늦게 먹은 밥은 항상 고기맛
* 가을 추(秋) 벼가 불타는 계절
가을 추(秋)=벼 화(禾) + 불 화(火)
가을 추(秋)는 추석(秋夕)에서 사용된다. 가을은 벼가 불타듯 익은 계절이다. 벼에 국한된 ‘불’은 아니다. 불을 때면 음식이 익듯이 계절이 지나도록 태양의 불이 만물에 열을 가하면, 적당한 시점인 가을에 열매가 익는다. 참으로 신비한 현상이다. 가을 추(秋)는 벼와 불이 합쳐졌다. ‘불타는 벼’는 광합성을 통해서 벼가 완전히 익어가는 가을을 의미한다.
광합성을 못하면 당도가 약해서 모든 열매가 맛이 없다. 제사상에 올릴 배, 대추 등도 맛탱이 없는 열매를 올려야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도 햇빛의 지식을 비쳐야할 젊은 청년의 시절에 그냥 고민하고, 오락하고, 늴리리 맘보 놀면서 빛대신 빚을 지고 살면 광합성을 못해서 열매없는 인생으로 끝나고 만다. 광합성은 식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독서가 곧 인생의 광합성이다.
秋의 옛날 글자에는 ‘메추라기’가 함께 그려졌다. 벼에 불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벼가 익어가는 계절을 메추라기로 표현했던 것이다. 즉, 메추라기를 구워먹는 계절이 ‘가을’이었다. ‘秋’의 발음이 ‘추’인 것은 ‘메추라기’에서 온 것 같다.
# 秋를 포함한 단어들
秋分(추분) 가을이 나뉘는 시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음.
立秋(입추) 가을의 시작
秋夕(추석) 가을밤, 음력 8.15
春秋(춘추) 봄과 가을, 나이에 대한 존칭
仲秋節(중추절) 추석의 중앙 절기(추석)
春夏秋冬(춘하추동) 봄여름가을겨울
秋收(추수) 가을의 收穫(수확)
三秋(삼추) 3년의 세월
秋史體(추사체)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
秋風嶺(추풍령)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고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의 경계지역
秋毫(추호) 가을의 털, 몹시 작음
秋霜(추상) 가을에 내리는 서리, 당당한 위엄
一日千秋(일일천추) 하루가 천년같음, 사랑하는 사람끼리 그리움이 사무침.
三秋之思(삼추지사) 삼년의 생각
秋風落葉(추풍낙엽)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갑자기 몰락하는 권력.
秋扇(추선) 가을 부채, 쓸모없는 물체
* 밤 야(夜) 이불덮고 잠자는 달밤
밤 야(夜)=옷 의(衣) + 저녁 석(夕)
달이 옷을 입었으니, 밤이다. 옷 의(衣)와 달 월(月)의 합성이다. 육달월(月)로 볼 수 있다. 이불을 덮고 잠든 때가 밤이다. 달이 어둠의 이불을 덮고 잠든 것도 된다. 밤 야(夜)는 저녁 석(夕)과 또 역(亦)이 합쳐졌다. 저녁의 저녁이니 밤을 말한다. 亦은 손을 움직이고, 또 움직여서 ‘또’의 의미다.
밤 야(夜)를 옷 의(衣)와 저녁 석(夕)으로 볼 수도 있다. 저녁 석(夕)은 달을 뜻하므로, 이불을 덮고 있는 달, 밤을 말한다. 달도 이불속으로 들어갔으니, 어두컴컴한 밤인 것이다.
밤 야(夜)를 옷 의(衣)와 육달월(月)로 본다면, 이불속에서 잠을 자는 때가 ‘밤’이다. 이불속처럼 밤이 아주 어둡다. 이불을 뒤집어쓰면, 이불속이나 밤하늘이 똑같이 어둡다.
시간은 새벽 신(晨), 아침 조(朝), 낮 오(午), 저녁 석(夕), 밤 야(夜)가 있다. 새벽 신(晨)은 별빛이 가득한 때, 아침 조(朝)는 해와 달이 함께 있는 시간, 낮 오(午)는 빛이 가장 밝을(十) 때, 저녁 석(夕)은 달이 반쯤 뜬 때, 밤 야(夜)는 달이 이불을 덮고 잠자는 때를 말한다. 이처럼 시간은 하늘의 해와 달, 별의 만남으로 결정되는 결과물이다.
# 夜를 포함한 단어들
晝夜(주야) 낮과 밤
深夜(심야) 깊은 밤
徹夜(철야) 밤을 뚫으면서
夜間(야간) 밤 사이
夜半(야반) 밤의 반
夜光(야광) 밤 빛, 夜光珠(야광주)
夜驚症(야경증) 밤에 놀라서 깨는 병증
夜雨(야우) 밤비
雪夜(설야) 눈 내리는 밤
熱帶夜(열대야) 뜨거운 밤(25도 이상 무더위)
夜戰(야전) 밤의 전투
白夜(백야) 하얀 밤, 남극과 북극에서 밤에도 빛이 있는 때.
夜勤(야근) 밤에도 일함
錦衣夜行(금의야행) 비단옷을 입고 밤에 거님, 보람없는 행동을 비유함.
晝耕夜讀(주경야독) 낮에는 쟁기질, 밤에는 독서
夜半逃走(야반도주) 밤중에 뛰어서 도망침
不撤晝夜(불철주야) 밤과 낮을 가리지 않음
晝夜長川(주야장천) 낮과 밤으로 흐르는 긴 냇물
晝耕夜讀手不釋卷(주경야독 수불석권) 낮엔 쟁기질, 밤엔 독서를 하면서 손에 책을 놓지 말아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