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교육우수도서 심사위원]=시(詩)는 모든 문학의 꽃이다. 소설가(小說家), 화가(畫家), 서예가(書藝家), 예술가(藝術家) 등 전문가들을 지칭할 때 모두 ‘家’로 분류하지만, 유독 시인(詩人)은 ‘家’로 분류하지 않고 ‘人’으로 하는 이유는 시가 문학의 중심이며, 시인은 구도(求道)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시는 압축하는 규칙과 비유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속으로 감성의 물줄기가 흐르게 한다. 시의 물줄기가 현대문학에서 마른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시(詩)는 시인들의 손과 마음속에서 강물처럼 샘솟으면서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1978년 태어나,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분 당선 및 2003년 문학사상에 시부분 신인상을 수상했던 김형미 시인이 2011년 불꽃문학상 수상에 이어 아름다운 감성시집 ‘오동꽃 피기전’(시인동네)을 출간했다. 누구나 겪는 슬픔, 외로움, 고통, 갈등, 상실, 인내, 사랑, 그리움, 애절함, 정욕, 절망, 인연 등의 추상명사가 구체적인 시어들로 압축묘사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성의 눈을 뜨게 한다.
이성혁 문화평론가의 말을 잠시 빌려본다. 이성혁 문화평론가는 단도직입적으로 김형미 시인을 김소월 시인에게 비유했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은 이별의 슬픔을 노래해, 한국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김형미 시인의 시가 이러한 절망과 슬픔에 대해서 다양한 단면을 묘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성혁 평론가는 “김소월의 시혼은 한국 현대 서정시의 전통을 세우는 시론이라고 해도 큰 이의(異意)는 없을 것이다. 김형미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이 시혼의 전통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시인 그 자신도 이를 의식하고 있을 않을까 생각된다. 김소월 시인이 삶의 오의(奧義)를 드러내고자 주력했듯이, 김형미 시인 역시 삶속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드러내고자 한다”고 평론했다.
상실(喪失)의 시대를 빚대어 ‘순실의 시대’가 등장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극단적 비판주의가 주류로 집권하고 있다. 하야(下野)를 하차(下車) 정도로 발언하거나, 혹은 대응하는 정치권들의 우격다짐속에서 우리는 간혹 ‘삶의 중요성’을 너무 망각하고 사는 듯 하다. 오늘 배달된 김형미 시인의 시집 ‘오동꽃 피기전’을 펼치면서, 누구나 겪는 그 애잔한 슬픔과 찬란한 사랑의 색채, 그리고 자신만이 꿈꾸거나 추억의 비밀의 방에 간직한 소소한 사랑이야기들이 물결치도록 시어들이 응축되어 있었다. 비유는 생활속 단어들로 나열되어서, 누구나 쉽게 시집에 빨려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들은 상당히 고매하면서 간혹 난해한 문장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핵심은 각 시마다 ‘감정의 색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움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그 문맥이 쉽게 읽혀서, 시의 고상함을 느끼는데 상당히 유익한 교육우수도서로 평가된다.
두괄식(頭括式)으로 그녀의 시집이 표현되었다면, 첫 번째 시(詩)는 시집의 얼굴일 것이다. 가장 말하고 싶은 말이 그 물체에 비유되었음에 틀림없다. 첫 번째 시는 ‘새’(鳥)이다. 새는 후진이 없다. 새와 물고기의 공통점은 뒷걸음이 없다는 것, 뒷걸음을 하려면 길게 돌아서 전진을 해야만 한다. 지금 정치 언어로 말하자면, 새는 ‘전진’만 있고, ‘퇴진’은 없다. 진(進)은 새의 날아감을 의미하는 회의글자이다. 그녀의 첫 번째 시는 딱 2문장이다. 정확히 말하면, 1문장이다. 2번째 문장은 부사절로 되어있으므로,
결코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날아와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고 죽을지언정
이 시를 보면, 이 시집 전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애절하게, 그 단면을 묘사하고, 단어선택과 비유에 신중한지 알 수 있다. (가령, 나라면 새가 유리창 창틀에 날아와 방안을 쳐다본다고 생각하겠는데) 어떤 종류의 새(鳥)인지는 모르겠지만, 죽기로 각오하고 날개짓을 한다면 그 삶에 무슨 후회가 있을까, 김형미 시인의 ‘오동꽃 피기전’의 시집에는 이러한 애절함이 묻어있다.
또한 이 시는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색채가 깊게 깔려있다. 실제로 김형미 시인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의 시에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그렇게 단 하루만, 흠뻑 젖어들고자 했다’라고 표현한다. 쓸쓸함은 존재의 부재가 아닌, 소통의 부재를 뜻한다. 그래서 김형미 시인의 시집에는 ‘인연과 나와 너와 모든 것’의 소중함이 들어있다. 시집의 뒷표지에 시인이 직접 쓴 글속에 이러한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김형미 시인의 글>
인연(因緣)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 집에 들어와 있는 저 커다란 거미, 언젠가 만난 담양 식영정의 금강소나무, 두고 온 땅콩 알갱이를 주워 먹고 찾아온 청설모와 까치부부, 어디선가 나타난 호피무늬견의 길 안내를 받고 찾아간 월명암, 그 자체가 한 방울의 이슬 같았던 지리산의 죽림정사, 목탁소리를 참으로 좋아한 강아지 보람이, 필요할 때마다 내게 깨우침을 주곤 하는 ‘그때’ 만난 책들, 이따금씩 내게 길을 물어오는 영혼들, 그리고 기쁘거나 아픈 영혼을 안고 오는 사람들….. 내가 가진 연필 한 자루, 시(詩)와 내 몽뚱이까지도, 이번 생에서는 그 인연들에게 훈훈한 마음 한 자락 내어주고 싶다. 그리고 발길을 멈추고 그로 인해 이어지는 삶에 대해 다시 써내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