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자유칼럼]=감기는 마음의 병이다. ‘감정의 기운’으로 정의되는 감기는 기침을 동반하거나, 두통과 콧물 등의 증세를 가져온다. 독감(毒感)은 지독한 열병과 함께 몸살로 이어진다. 감기증세는 마음의 병처럼 감정에 심한 변화를 야기시킨다. 우울증 비슷한 압박감같다. 현미경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도 ‘바이러스’의 존재를 ‘감정의 존재체’로 인지했던 것 같다.
며칠째 감기에 시달리면서, 새삼 깨닫는 것은 음식의 청결함과 공기의 소중함, 또한 공기속에 섞여있는 수분의 함량이다. 맛있는 밥도 수분이 부족하면 된밥으로 혀끝이 거부하는데, 공기의 수분함량은 대충 따지면서 마셨던 그동안의 호흡습관에 반성도 된다. 음식맛처럼 공기맛도 가려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내가 자주 가는 행복한의원이 이번에는 영 듣지를 않는다. 그만큼 내 감기가 심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행복한의원 원장은 “초반에 왔다면, 하루만에 고쳤을 것이다”고 규정하면서, 나는 3일째에 갔으니, 꼬박 4일을 치료받으면서 감기의 비탈을 오른 느낌이다.
목에 놓는 면역약침은 10초 정도 참으면 뜨끔하면서 그런대로 맞는 기분이 나는데, 손에 맞는 감기침(感氣針)은 10cm 정도 손안에 넣는데, 오늘은 침을 끝까지 쑥쑥쑥 넣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옆의 함께 있던 할머니, 아줌마, 아저씨들은 남의 손에 들어가는 침이여서, 신기하면서도 나보다 더 아프다는 표정으로 구경한다. 침은 맞은 후부터 아프다.
지금 상태로 판단하자면, 내일도 나는 감기에 시달릴 것 같다. 감기의 지독한 것은 모기처럼 은밀하게 숨었다가 목부분을 공격한다는 것, 자려면 튀어나오는 모기처럼 목이 기침을 토해낸다. 내가 감기를 좋아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다. 잠 못 자게 하는 이 기침 때문에, 나는 공기속 수분함량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가습기 살균기를 사서 틀 수도 없다. 수건을 3장 정도 물에 적셔서 널어놓았더니 나름 자연 가습기로서 효과가 있는 것도 같다. 내가 해병대 근무했던 시절에도, 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겨울저녁에는 주전자의 물을 바닥에 뿌리는 규정이 있었다. 수분부족 현장은 건조함으로 목을 탁하게 하고, 감기환자를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나름 민간의학에 기초한 조치였다. 그것처럼, 방에 수건을 널었더니, 따뜻함과 축축함이 공기속에 스미는 느낌이다.
행복한의원 원장에게 궁금해서 물었다. “왜 자려면 기침을 하죠?”
원장이 정확히 말해준다. “누우니까, 기침이 나오는 것이죠. 또, 공기가 건조하면 기관지는 수분을 더 흡수하려고 자동적으로 기침을 하죠. 수분이 공기중에 적당히 있는 것도 기침을 멎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숨을 쉰다는 기쁨, 숨을 편안히 쉰다는 그 기쁨, 공기의 맛을 신선하게 느낄 수 있는 그 행복감은 사람으로서 존재가치이다. 거의 2초마다 공기를 호흡했다가 내뱉는 소통의 반복행위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감기에 걸려서, 지독한 기침으로 밤잠 설치는 감기와 전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보다 무엇이 중요한가? 공기, 그리고 공기속 수분함량, 결국 물과 공기는 사람에게 가장 보편적이면서 필수적으로 가치있는 존재물이다. 경제학적으로 품귀현상은 그 희소성의 가치로 정의되지만, 물과 공기는 희소성을 초월해 존재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존재물임을 자각한다. (물대신 술을 찾고, 공기대신 담배를 찾는 애주가와 애연가에게 할 말은 없지만)
오늘은 ‘내가 심리전문가로 알았던’ 그러나 ‘사회학 전문가’인 사람을 만났다. 애써 나의 판단착오를 변명한다면, 그녀는 ‘사회심리학 전문가’라고 포장하고 싶다. 하기사, 우리가 공기를 마시면서도 공기의 구성성분과 그 역할과 공기의 흐름에 따른 날씨와 기상변화를 예측할 수 없듯이, 인류가 공존하는 사회의 구성인자와 그 흐름을 이해한다는 것은 미적분 공식처럼 간단한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분화’(分化)는 ‘사회구조의 진화방향’이라는 정의에, 나는 솔직히 눈을 끔뻑끔뻑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해가 될 듯, 청신호가 켜지거나, 혹은 난해하여 적신호로 바뀌거나, 나뉘어진다는 사회구조의 방향에 대해서, 감기만 아니라면 명쾌한 질문도 던졌겠지만, 복잡한 인식관의 구조에 대해서 학습하는 기회를 얻었다. 감기가 나으면, 좀 더 깊게 연구해볼만한 숙제이다. 그녀는 조정혜 갈등관리조정전문가이다.
감기 덕분에 배운 것이 있듯이, 내가 그녀에게 배웠던 가장 큰 교훈은 ‘갈등’에 대한 이해다. 나는 갈등(葛藤)을 칡넝쿨과 등나무의 악연(惡緣)으로 늘상 이해했는데, 그녀는 갈등은 변화의 청신호이고, 조직발전의 소중한 자원으로 해석했다. 나는 칡넝쿨을 나쁜쪽, 등나무를 좋은 쪽으로 이분법적 해석을 했다면, 그녀는 칡은 칡으로, 등나무는 등나무로 각각 존재가치가 있고, 서로 얽힌 배경을 이해한다면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는다고 했다. 그런 해석을 듣고서, 나는 칡을 베려던 나의 날카로운 비판의 낫자루를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자숙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감기(感氣)도 어쩌면 나에게 변화의 청신호로서 갈등의 인자인가? 침을 넘길 때 따끔거리거나, 숨쉴 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기침이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감기(感氣)는 나의 존재의미에 대해 생각할 고독의 촉매제가 되고 있으니, 반드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