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사극 드라마 화랑이 저조하다. 1회, 2회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 귀족주의를 대항해서, 파격적이면서 엄청난 액션과 사건전개를 선보였지만, 약하다. 느리다. 폭탄이 터지기는 했는데, 변방에서 터진 느낌이랄까? 자식을 잃은 아버지와 죽음을 앞둔 자식을 만난 아버지의 그 오열은 시청자가 공감하기엔 너무 이르다. 그러니까, TV만 슬픈 그런 느낌, 감정이입을 채 하기도전에 배우들이 왜 울어야하는지, 단지 목걸이 하나만으로 자신의 신분을 알아챌 수 있었다는 그런 우연의 일치도 이상한 것 같고, 왕경이란 곳이 지금의 월성지역 수도라고 한다면, 서울처럼 드넓은 것인데, 동쪽과 서쪽과 남쪽과 북쪽의 엄청난 장소가 있을 것인데, 어떻게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데 길을 나선 아버지가 그냥 만날 수가 있다는 것인지…… 너무 일찍 그 아들을 죽인 것은 아닐까싶기도 하고, 주인공의 존재감을 극부상하려고, 귀족의 신분을 입은 천민출신의 뛰어난 인재를 만들려고 인위적 연출을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작위적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 별점 5점의 낮은 이유다. TV는 배우들을 위한 잔치가 아니고, 시청자들이 TV를 통해 함께 울고, 웃고, 나아가 배우고, 말하고, 생각하는 공감적 쌍방향 소통의 교실같은데, 화랑 드라마는 지금의 금수저와 흙수저의 패배주의과 극단적 분열주의에 일침을 가하는 매우 좋은 소재를 던지면서도, 시청자들과 흡인력에서 초반부에 실패한 느낌이 많이 든다. 아무리 낭만닥터가 인기가 높다고 하여도, 그것은 핑계가 아닐까싶다.
花郞은 꽃같은 사내, 즉 꽃미남을 뜻한다. 젊고 패기 왕성한 젊은 사내를 뽑아서, 보이스카웃을 삼아서 ‘젊은 장교’로서 엘리트 교육을 시킨 다음에 전쟁의 최전선에 투입한 신라의 엄청난 신분상승 제도였던 것 같다. 신라시대를 보면, 고구려와 백제보다도 열악한 조직체계였음이 분명하다. 통일할 때에도 여전히 골품제도가 팽팽하고, 성골이니, 진골이니, 따지는 그런 가문중심 국가인데도, 어찌 통일을 했던 것인지, 그것도 참 의문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너무 못했던 그런 것인가? 인재양성에서 화랑제도는 통일전쟁에 급부상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젊은 청년들의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에 비하면, 고등학생들의 조기취업을 통한 재직자 전형 제도의 활성화,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에 전폭적인 지원책이 젊은 청년의 실업률도 막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사회적 역량강화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다. 시대는 밀물썰물처럼 변해야지 시대조류에 부응하지 못하는 교육정책은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으니, 늘상 경계해야할 것이다.
우리시대에 과거 신라처럼 천인과 귀족의 명백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천인과 귀족은 분명하다. 정치적 천인과 귀족도 분명하다. 정치적 귀족들이 여당과 야당으로, 친박과 비박으로 싸울 때, 정치적 천인에 해당하는 국민들이 촛불집회로서 국가를 흔들었다. 정치권을 향한 거대한 경고장과 같은 것이다. 보수주의(保守主義)는 보호하고 지키려는 움직임인데, 그것은 특권층의 전유물과 같은 기득권이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모두 보수층의 특권층이다. 없는 자는 늘상 백성이다.
화랑(花郞)에서 花는 草와 化가 합쳐진 것이다. 풀이 변해서 된 것이 곧 꽃이다. 풀은 草花果로 변하는데, 果가 있는 것은 드물다. 과일나무는 果가 있지만, 대부분 草花로 끝나고 香氣가 곧 열매가 된다. 꽃의 핵심은 변화에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풀이 은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꽃의 얼굴이 있어서다. 그처럼 사람은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의 특기, 꽃을 피워야한다. 꽃을 피우는 것은 평범한 자신의 실력을 지속적으로 연마해서 특별한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그런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꽃을 돌아보듯 쳐다보게 된다. 화랑에서 ‘花’는 그런 재능을 상징하는 말이다.
郞은 사내를 뜻한다. 신랑(新郞)에도 이 단어가 사용된다. 새로운 사내, 곧 갓 결혼한 남자를 일컬어 신랑(新郞)이라 한다. 신부(新婦)는 새롭게 결혼한 부인을 의미한다. 郞은 좋을 량(良)과 언덕 부(阝)의 합성이다. 좋을 량(良)은 맛있는 쌀밥을 올려놓은 숟갈(白匕)이며, 양심(良心) 양호(良好) 등에 사용된다. 郞은 그 도시에서 가장 좋은 사람을 말하는데, 더 깊은 의미로서, 밥값하는 사람(良)과 언덕처럼 든든한 사람(阝)을 뜻한다. 언덕은 사람들이 기대고 싶고, 눕고싶은 그런 포근함이 있다. 남자는 ‘그런 넓은 확신의 받침’이 있어야한다.
화랑(花郞)은 곧 꽃미남이며, 재능의 꽃을 피우는 젊은 사내로서, 밥값하는 취업자이며, 언덕처럼 든든한 인성을 함양한 사람을 말한다. 대학을 진학했든, 아니든, 자신의 진로를 확실히 하고서 꾸준히 연마해서 사회속 일꾼이 된 사람이 바로 이 시대 화랑(花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