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자유칼럼]=네이버 한자사전을 검색하면, 華와 花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글자를 일컬어 ‘약자’(略字)라고 한다. 생략한 글자는 시간을 단축하고, 손의 힘을 덜게 해주면서 고단함을 감축한다. 나는 華 보다 花가 좋다. 생김새도 그렇고, 간결미의 깊이가 더 매혹적이다.
물론, 꽃은 식물의 씨앗이 가장 절정을 이루는 과정이어서 ‘花’로 표현하기엔 미안함이 많다. 꽃은 그 향기도 그렇고, 꽃잎과 함께 생김새가 사람의 얼굴처럼 특색있고, 각양각색 오묘하다. 장미꽃이든, 호박꽃이든, 식물마다 가장 아름다운 형체로 얼굴을 그려낸다. 식물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차려내는 진수성찬’처럼 꽃을 피운다. 생략형으로 꽃피우는 것은 아니다.
그런 꽃을 글로 표현할 때조차, 사람들은 생략형을 추구한다. 나도 그렇다. 바쁜 것도 있지만, 약자속에 감춰진 복잡함의 간결미라고나 할까? 날마다 뷔페식당에 가서 푸짐하게 식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김밥천국에서 김밥 몇줄로 식사를 먹거나, 밥과 맛있는 반찬 1~2가지로 식사를 채울 때가 많다. 花에 해당한다. 華의 밑은 꽃잎이고, 꽃잎이 ‘化’로 축약되었듯, 밥먹는 것도 결국 밥과 반찬으로 간소하는 것이 편할 때가 많다.
때론, 바쁘다고 설거지가 밀려서 수북히 쌓이는 습관이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밀린 숙제처럼 그릇들이 포개져서 인상을 찌뿌리는지, 결국 그러한 산더미 설거지는 ‘華’ 때문이다. 밥을 맛있게 먹으려고 그릇들을 꺼내서 아름답게 포장하고, 김치는 김치대로, 고등어 조림은 고등어 조림대로, 계란부침까지 한상 가득히 차려놓으면 먹을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먹고나면 ‘먹은 일’이 일이 되버린다. 일이 많으면 나태한 손은 시간을 연기하려고 하고, 그렇게 싱크대는 싱크홀처럼 게으름에 빠진다.
그런데, 김밥처럼 완전히 축약하면, 밥솥까지 쉽게 설거지를 끝내는 법이 있다. 밥솥의 밥을 밥그릇에 담는 그 순간 밥솥을 깨끗이 설거지 해버리고, 밥에 밑밥찬통의 반찬을 꺼내서, 맛김같은 1회성 반찬을 곁드리면, 식사후 1분이면 설거지가 끝난다. 설거지를 할 것도 없다. 아주 쉽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언제 그렇게 많은 글을 썼냐고 물을 때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밥먹듯 그렇게 글을 썼었다. 드라마를 보면, 감동이 물결치니, 누에가 실을 꺼내놓듯이 글을 풀어놓았다. 어떤 때는(별에서 온 그대) 드라마를 보면서 타이핑을 치면서 글을 썼었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날마다 그때그때 조금씩 하는 것이 성장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花’이다. 축약해서 쉽게 하면서 자주 반복하게 행하면 그 방면의 달인이 되는 것이다.
한 잔의 코코아를 타서 마신다. 이 코코아를 모두 마시면, 이 글이 끝날 때쯤이겠지만, 그때 나는 바로 컵을 씻을 것이다. 이것이 게으름을 삭제하는 첩경임을 스스로 터득했기에, 내년에는 쌓아두는 나태함을 없애는 생활을 이뤄야겠다. 설거지처럼 빨래통도 비슷한 습관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2017년도에 도전할 나의 숙제다.
花를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花에 들어있는 ‘化’는 변화의 글자로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모태에 있던 태아는 태어나려는 그 순간 머리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변화의 순간은 언제나 절망같은 것이다. 그러한 절망의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化는 과거의 끝, 새로움의 시작과 같다. 2016년의 끝에서 2017년의 시작을 바라보는 지금, 花의 의미가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