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우수도서 선정위원회]=누에처럼 부드러운 단어가 어디에 또 있을까? 뽕잎이 부드럽듯, 누에는 발음부터 바람이 스치는 듯 하다. 누에를 닮은 책이 한권 나의 집을 방문했다. 노란 표지를 펼친다는 것은 작가의 내면을 알아가는 것이다. ‘누에’라는 책제목에서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김이흔 작가의 인생 이야기는 부안(扶安)을 중심으로 누에의 신농씨 시절부터 지금까지 기나긴 여정을 전개한다. 누에가 만든다는 그 ‘실’은 ‘barley’가 보리가 되듯, ‘실크’가 되었다. 우리가 실크라고 말하지만, 실상 순 우리말이다. 한반도에서 시작된 길고 긴 실크로드의 여정처럼, 김이흔 그림에세이는 누에를 모티브로 역사, 한문, 정치, 철학, 종교, 예술 영역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스스로 누에의 길을 가고 있다.
누에가 눈이 없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책의 서두는 이 책이 얼마나 관찰력이 예리한지 보여준다. 아마도, 누구나, 누에가 눈이 없다는 인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누에’에 이미 ‘눈’과 같은 발음이 있으니, 누가 봐도 누에는 눈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눈이 없다고 하면서도, 김이흔 작가는 “눈이 없음으로 눈이 있다”는 역설법으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서술법이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아마도, 누에가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는 작가로 비유되지 않을까? 165p의 단편소설 분량의 그림 에세이에는 짧지만 응축된 문장들이 누에의 실처럼 편안하게 풀어져 있다.
처음 누조와 맞닥뜨렸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보고 있지 않음으로 해서 보고 있었다. 텅 빔 속에 말갛게 비치어드는 두 눈, 종령기를 맞은 누에 같다, 고 나는 생각했다.
– 본문중에서
해당 도서는 누에의 삶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다양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 교육도서로서 탁월하다. 보통 생물로서 누에만 알지만, ‘누에’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의미, ‘누에’의 생물학적 특징과 그 특징의 문학적 비유, 누에가 누에로서 살아가는 삶, 누에를 누에로 관찰하는 사람들의 인식, 역사를 통해 변천해온 누에에 대한 문화 등등 누에는 곧 역사의 여정이며, 생물로서 누에를 아는 것은 하나의 단면을 보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그리하여, 누에처럼 결국 자신도 누에와 같음을, 김이흔 작가는 고백어조를 끝을 맺고 있다.
김이흔 작가 경력
– 원광대 문창과 졸업
– 진주신문 가을문예 신춘문예(시) 등단
– 전북일보 신문문예 시 당선
– 문학사상 (2003년) 시 당선
– 불꽃문학상 수상 (2011)
– 서울문학상 수상 (2016)
– 작품 : 산밖의 산으로 가는 길
– 작품 : 오동꽃 피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