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내가 니클라스 루만을 알게 된 것은 누군가 소개 덕분이고, 사회학에 전혀 문외한인 나에게 루만의 이론은 ‘주역’을 읽듯 어렵고 난해했다. 다행히 이철 교수의 강좌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사회학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를 하게 됐고, 이후 관련 도서를 구입해서 재밌게 탐독하고 있다. 그런데,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하게 설명된 루만의 이론을 연구하며, 보다 쉬운 책은 없을까, 고심하면서 ‘책에 대한 연구책’을 집필하기로 작정하고, 이 글을 틈틈이 기록하기로 했다. 새물결 출판사에서 펴낸 ‘니클라스 루만 체계이론 입문’과 니클라스 루만으로 초대(갈무리)를 자주 읽었는데, 자료 발췌는 인용 구절마다 각각 표기하였다.
새물결에서 펴낸 책은 루만이 대학에서 강의했던 녹음테이프를 풀어서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대학강좌는 대학생들의 열정을 상대로 교수의 모든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 사회로 진출하는 미래 사회학자들을 양성하는 진실된 마음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므로, 이 강좌에 쏟았을 루만의 혼신은 464p 책 두께만큼 깊게 와 닿는다. 단지,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독일어 문화권에서 진행된 강의여서 한국어로 번역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그 틈새격차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나는 니클라스 루만에 마음에 들어서, 그의 이론을 탐독하며 질문도 던지면서 새로운 책을 써내려간다.
니클라스 루만은 “베버, 마르크스, 짐멜 또는 뒤르켐 등을 원용하는 사회학 이론들이 여전히 지배적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이 문장을 읽으면서 3~4번 그 뜻을 이해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도대체 저렇게 유명하고 저명한 인물들을 거론하면서 약간 부정적인 냄새가 섞여 있을까? 이런 의문을 던지자, 깨달아지길 공자와 맹자가 스쳤다. 그러니까, 지금은 공자왈 맹자왈 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전히 공자왈 맹자왈 한다면 그 이론이 지금 사회에 유용할까? 한문만 하더라도 시대가 변해서 한글중심으로 이미 변했으니, 한문보다 과학과 영어를 배워야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주자학, 성리학 등은 이미 시대의 낙후된 정치이론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도 과거의 이론을 가지고 지금 현대를 해석하려면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길, 왕이 왕같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고 했다는데, 그런 말 할 것도 없다.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왕을 탄핵했고, 국민투표로 이미 왕을 뽑지 않던가? 맹자를 거론하는 것이 맹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듯, 시대가 변했는데 과거의 이론으로 새로운 시대를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말한다. 니클라스 루만조차 21C를 맞지 못했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는 루만이 살았던 시대에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대혁명이다. 루만의 이론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스마트폰 시대일 것이다. 그는 겪지 못했으므로…. 시대가 변했다면, 과거의 이론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한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당연한 이치다. 루만의 주장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사회가 변했다면 사회이론도 변해야한다는 것!!! 과거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공장폐수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 그것은 과거의 유명한 인물들도 연구하지 않은 과목이다. 쓰레기 분리배출 문제, 층간소음문제, 항공소음문제, 브렉시트, 유럽연합, 국제사회에서 국가간 분쟁문제(춘추전국시대에 이와 비슷한 정치 현상은 존재함) 등등 과거에 없었던 현대사회 문제는 현대에 맞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 것이다. 뉴튼이 아무리 대단하고, 아인슈타인이 과학의 영웅이라고 해도, 지금 시대의 현대과학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과학이론이 나오고 있으니, 과거는 참조하고, 지금 시대를 해석하는 알맞은 옷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이 현대사회에 맞는 사회이론이라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