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태동은 사소했다. 밭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청동기 시대, 콩과 보리와 수수를 심었더니 풍년이 들었고, 먹고 남는 식량이 많아지면서 ‘소유권’이 발생했다. 길들여진 멧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아 돼지부자가 되고, 잉여생산물은 분배와 관리문제로 이어진다. 청동기 시대의 핵심은 지도자다. 잉여생산물을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하고, 나눌 것인지, ‘나눗셈’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야, 지도력이 있다. 청동기 시대 역사를 공부하면서, 생기부 기록을 잠시 생각해 봤다.
학교마다 학교행사를 학생이 직접 주관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창체활동의 자율활동 부분이 보다 풍성해지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고등학교의 경우 자율활동 부분이 ‘복사하기’로 주를 이룰 때가 많다. 몇몇 학급회장과 미화부장을 제외하면, 자율활동이 공통행사로 점철될 수 밖에 없어서다. 그런데, 학급활동을 위한 공통예산을 편성하고, 학급회장과 지도자단이 그 예산을 정말로 자율적으로,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든다면, 학생부 자율활동 부분이 보다 풍성해질 수 있다.
학교축제와 같은 큰 예산을 비롯해서, 학급 자체에 편성된 작은 것까지, 집행과정이 학생부에 담긴다면, 쓸 내용이 많아진다. 이것은 물론 학생회장, 학급회장에 대한 부분이지만, 해당 학급의 학생들도 예산집행에 대해 제안을 할 수도 있고, 예산집행의 적절성에 대해 감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
요즘의 학급은 단지 행정부 기능만 가르치는데, 행정부보다 ‘국회의 감독기능’을 교육하는 것도 좋다. 감독은 비판기능과 더불어 ‘평가와 인정의 기능’도 존재한다. 조선시대 삼사기능처럼, 학급회장과 지도자단을 감시하고, 비판과 견제를 할 수 있는 제도가 학급내에 신설된다면, 민주주의 제도가 보다 원활하게 정착될 수 있다.
단지, 조선시대 삼사기능은 지나친 비판과 감시기능이 강하므로, 학급내 신설할 삼사는 보다 완화된 기능으로서 학급회장과 지도자단의 활동과 발언과 정책에 대해 재관찰의 보완기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제한해줄 필요가 있다. 비판이 강하면 협력인성에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금이 너무 강하면 짠 맛이 입 맛을 버리듯, 비판도 그렇다. 비판보다 ‘인정과 궁금증’으로 학급내 삼사기능을 제한하면, 학생에게 맞는 학급회장을 보완할 균형적 제도가 생기면서, 지도자가 관찰당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다. 지금의 학급활동은 실상 왕권체제와 비슷하다. 학급회장과 지도자단만 있고, 그것을 집행할 뿐, 그 활동에 대한 감시기능이 없어서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언론의 4권분립은 민주주의 핵심이다. 그처럼, 학급에도 모든 학생들이 학급의 테두리안에서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맡는다면, 생기부 자율활동이 보다 풍성해질 것이다. 이는 담임교사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