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쇼콜라티에’는 프랑스적인가? 벨기에적인가? 혹은 이태리적인가? 정답은 한국적이다. 쇼콜라티에의 원어를 한국어로 번역했어도, 그 발음은 한국어로 들릴 수밖에 없다. 프랑스인이 말하는 쇼콜라티에 의미가 설령 말로 설명된다고 하여도, 프랑스인이 아닌 이상 쇼콜라티에 직업은 한국직업에 속한다. 이것이 ‘언어로서 직업’의 깊은 비밀이다.
이런 현상은 역사가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고려시대에 속했다고, 혹은 그 어떤 지역에 존재한다고, 그러나 우리는 결코 고려시대에 갈 수 없다. 고려시대를 연출하는 방송 무대일 뿐이고, 역사가들의 해석도 결국 현재에 속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무리 ‘가야문명의 복원’을 지시해도, 그것은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야문명’이지, 가야시대에 살았던 그 사람들의 복지는 아니다. 역사는 결국 현재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역사가의 사용하는 언어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여서, 역사서술은 우리의 몫이다.
프랑스 요리를 한국인이 설명한다면, 그 요리는 한국요리다. 아무리 프랑스 원어로 설명한다고 해도, 한국요리다. 단지, 프랑스요리로 보여지는 한국요리이며, 외국 문화를 처음 접하는 설레임으로 음식을 경험하겠지만, 그것은 한국음식이다. 외국에 나가서 외국 음식을 맛볼지라도 그것은 한국음식이지, 외국음식이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음식을 맛보는 사람이 한국인이어서 그렇다. 외국음식 그 자체로 인식하고 싶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다. 인식체계를 그 나라 문화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건너온 음식이든, 직업이든, 그것이 한국에 정착했다면 한국문화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고급언어 80%가 일본이 만든 한자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정보다. 우리는 ‘정치, 문화, 언어, 사회, 인간’ 등의 언어를 ‘일본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인이 이미 사용하고 있으므로 한국언어인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 역시 미국적이지 않다. 이미 한국정치제도가 되었다. 그처럼, 쇼콜라티에 역시 한국문화이며, 한국직업이 된 것이다.
귤화유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귤과 탱자는 씨가 같지만, 온도와 기후에 따라 전혀 다른 열매를 맺는다. 그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는 지역 풍토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음식문화와 결합한 초콜릿의 향후 10년이 쇼콜라티에 직업의 성공을 결정할 것이다. 귤이 될지, 탱자가 될지, 그 결정은 풍토와 기후에 달려있다. 쇼콜라티에는 이미 외국에서 들여왔고, 어떻게 성장할지는 초콜릿을 사랑하는 모든 한국인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