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칼럼 | 장창훈 한자교육위원장
숫자 1, 2, 3처럼 쉬운 것이 없다. 차례대로 숫자가 올려지는 것인데, 막대기 3개를 말한다. 손가락 1개, 손가락 2개, 손가락 3개를 말할 수도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것을 명확히 이해시키면 좋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서, 설명해야한다.
밥상위에 숟가락 1개가 ‘一’이고, 젓가락은 ‘二’가 되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三’이 된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러한 상상력은 아이의 두뇌개발에도 좋고, 한자를 이해하는데 창조적 발상을 하게 된다. 한자는 본래 그림문자이므로, 구체적인 사물과 연상해서 이해하면 상당히 도움된다.
이렇게 쉬운 한자에 대해서 ‘그냥 암기하면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자에 대한 접근 방법이 틀렸다. 한자는 수만개의 글자로 되어있지만, 그것은 단지 그림의 조합일 뿐이다. 마치 순열처럼 결합의 방법은 무수하다. 모든 결합글자들을 각각 낱개로 외운다면 그것은 평생 해도 못한다.
시작부터 ‘그림’으로 이해하는 훈련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한자의 근본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자가 총 100개로만 되어있다면, 그냥 암기하면 끝나는 문제다. 한자는 그렇지 않다. 1000개의 글자로 넘어가면, 머리가 아주 복잡해진다. 그러니, 한자를 그림으로 이해하고, 결합하는 원리를 파악하면 어려운 글자도 쉽게 이해한다.
‘一’은 유일한 하나를 말한다. 영어로는 only이다. 오직 그 하나, 석가모니가 말했던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이다. 자기 자신은 유일한 하나이고, 하늘도 유일하며, 땅도 그렇다. ‘一’은 지평선도 되고, 수평선도 된다. 모든 시작점이며, 모든 근본이며, 모든 희망이다.
‘二’는 만남이다. 둘은 곧 상대성이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 여당과 야당의 만남, 멘토와 멘티의 만남, 부모와 자식의 만남, 나와 너의 만남,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그 상대성 이론이 곧 ‘二’이다. 하늘과 땅, 둘의 만남으로 ‘사람’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三’은 곧 ‘삼겹살’이라고 하면, ‘황당’하다고 할 것인가? 좀 어떤가? 삼겹살로 이해해도 된다. 또한 하늘과 사람과 땅이 곧 ‘三’이다. 성경에도 보면, ‘두겹줄은 끊어지지 않고, 삼겹줄은 영원하다’는 의미가 존재한다.
대통령과 정치인과 백성이 하나되면, 부국강병은 이미 금메달이다. 삼권분립은 균형과 견제를 위한 민주주의 기본통치 이념인데,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가 서로 맛물려서 제대로만 움직인다면 민주주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제도가 될 것이다. 가족도 아빠와 엄마와 자녀가 삼겹줄이다.
숫자 4는 손가락 4개를 말한다. 1, 2, 3처럼 숫자 4도 작대기를 4개 합쳐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얼마나 편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옛날 갑골문자를 보면 그런 글자가 있다. 작대기 4개를 올려놓고서 숫자 4를 의미했는데, 문자가 점차 완성되면서, 四의 모양이 만들어졌으니 사람은 역시 언어적 생물임에 틀림없다.
아메바와 사람이 다른 근본적인 이유는 ‘창조적 발상’이 아닐까? 1차원에서만 머물지 않은 인류문명의 대변혁은 ‘열매를 따먹는 방법’에서 ‘열매를 심는 방법’으로 대전환했고, ‘동물을 잡는 방법’에서 ‘동물을 기르는 방법’으로 또한 변혁했다. 농사와 사육은 신석기 혁명으로 기록되어있다.
동물들은 여전히 그들의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인류는 벌써 하늘에 집을 짓고, 하늘을 새처럼 날아다니고, 이제는 스스로 생명을 연장하는 의술을 발달시켜, 지구행성의 주인이 되었다. 몸집이 거대한 공룡조차 꿈꿀 수 없는 거대한 빌딩들을 건축하고, 인류는 그 안에서 하늘을 내려다본다.
막대기 4개를 쌓아올린 글자에서 ‘四’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역사적으로 삶과 죽음을 반복했을까? 문명의 틀속에서 문자는 지금까지 변형해 왔다. 거푸집에서 모형이 완성되고, 가마에서 도자기가 구워지듯 그렇게 문자는 문명의 틀에서 그 형상을 만들어왔다. ‘四’가 그 증거다.
너무 거창한가? 오늘 아이에게 ‘四’에 대해서 물었더니, “밥상”이라고 답했다. 밥먹는 밥상을 본뜬 글자가 ‘四’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니 정말로 그렇다. 밥상위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젓가락, 혹은 밥그릇과 국그릇…. 상상에 맡기겠다. 입 구(口)와 여덟 팔(八)의 합성이니, 밥상위에 팔을 올려놓은 모습도 되겠다.
‘四’는 곧 사각형이다. 동서남북(東西南北)을 의미하고, TV를 말할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이 마주앉는 탁자가 될 수도 있다. 사각형(四角形)은 뿔이 4개이고, 변도 4개이니, 숫자 4를 대변할 만하다. ‘네모’는 순우리말로서 발음도 좋다.
‘四’를 설명함에 있어서, 매우 철학적으로 동서남북을 ‘나눠서(八)’ 4를 의미한다고 말하면 그 의미가 도대체 무엇을 말한다고 생각할까? 입 구(口)와 나눌 팔(八)이 합쳐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2개를 무작정 문자적으로 억지해석하면, 해석이 불가능하다. 그냥 ‘밥상’이라고 하면, 그렇게 편한데 그것 말고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갑골문자’를 뒤적이면 한자가 쉬워질까?
허신의 설문해자도 마찬가지다. 너무 철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다보니, 허신의 해석에도 ‘착오’가 많다. 또한 허신의 시대에는 TV도 없었고, 핸드폰도 없었고, 과학문명도 매우 뒤쳐졌다. 문자는 이미 2000년을 넘게 인류와 함께 살아왔는데, 지금도 허신의 해석을 고집하면 한자는 ‘경쟁력’에서 밀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자라나는 아이가 해석법, ‘밥상’으로 ‘四’를 이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