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달팽이가 나에게 왔다.
– 시인 장창훈 (2001.8. 월간 문학세계 등단)
어느날, 달팽이가 나에게 왔다.
그날은 상추쌈을 먹던 날,
꿈틀꿈틀 뭔가 움직였다.
나의 식사 방해꾼은 마땅히 엄벌에 처해질 운명
나는 강하고
그는 약하니
내가 없애면 없어지는 미물
누구도 없는 나의 손끝에서
나는 결정하였다.
용서의 그릇을 달팽이에게 주기로
그 녀석은 하루 하루 아주 작게 움직이며
나의 배려를 넓은 들판처럼 돌아다녔다.
상추 한잎이 그에겐 푸른 풀밭이고
배추 한포기는 산맥이다.
뚜껑을 덮지 않은 어느날
달팽이가 탈출했다.
감옥같았던 것인가?
장롱 밑에서 웅크린 그 녀석은
인생의 고독처럼 숨었다.
상추잎위에 눕혀 집에 돌아온
달팽이에게
나는 뚜껑 대신 바닥에 물이 흐르게 하였다.
달팽이는 수영을 못한다.
섬처럼 배추 한포기를 큰 그릇속에 두고
달팽이는 배추섬에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인생, 때론 달팽이다.
그저, 살아갈 상추잎 하나
풍성한 배추잎 하나면 족하다.
나의 하나님이
특별히 베풀어준
상추잎과 배추잎에 딱 붙어
나는 넉넉히 살아간다.
시인 장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