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효(孝)는 자식이 부모를 엎는 것이다. 老+子의 합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론이다. 실제는 자식이 지게를 짊어지고, 부모의 손과 발이 된 것이다. 등에 엎고서 동네를 돌아다니면 팔이 아파서 자식과 부모 모두 불편하다. 그래서 지게를 등에 짊어지고, 그 위에 부모를 모시고 다녔다. 날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부유한 양반집에서는 그시대 자가용인 가마에 태워서 부모를 모셨으니, 자식이 힘들지 않았지만, 일반 백성은 자식이 직접 부모를 모시고 다녀야하니, 여간 힘들었던 것이 아니다. 효(孝)는 자식이 부모를 사랑으로 공경하고, 그러한 행동을 보여줌으로 자녀들에게 문화의 유전을 형성한 것이다.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듯, 부모는 부모의 부모에게, 자식은 자식의 부모에게, 차례로 효를 행하면서, 동방예의지국으로서 동이족은 지금까지 ‘효’를 순행한다. 물론, 간혹 물줄기중에 뾰쪽 튀어나오거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물줄기가 있듯이 효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동이족의 내면에는 효(孝)의 강물이 면면히 흐른다.
다문화에서 다(多)는 고기를 서로 올려놓은 모습이다. 삼겹살을 먹을 때,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1사람이 함께 굽는다. 3인분을 시켜도, 그것은 3인분이 하나의 묶음으로, 3인분이다. 1인분이 3명으로 각각 구분되어서 나오지 않는다. 설렁탕이나, 된장찌개는 각각 구분되어서 나오지만, 고기는 하나의 접시에 담겨서 나온다. 이것이 고기의 가족개념이다. 多는 서로 쌓여서, 쌓인 고기를 서로 나눠주는 것이다. 다문화는 이처럼 가족의 개념이 녹아져 있다. 황금빛 내인생에서 주인공 서지안이 그 아버지에게 “왜, 가족은 모여 살아야하나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가족이니까….”라고 대답하였다. 가족이라서 서로 상처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서지안의 마지막 말에 그 아버지는 설명대신에 “가족이니까”라고 말을 대신한다. 가족은 뭉침이고, 함께있음이고, 역사의 현실이며, 최소단위의 공동체 사회이다.
다문화 개념은 반드시 겹쳐야한다. 내국인위에 외국인이 함께 겹쳐서 쌓여야 그것이 다문화이다. 다문화를 말하면서, 돼지가족의 숫자 계산법처럼 자신을 빼고 ‘다문화’를 논한다면, 그것은 다문화가 아니다. 다문화는 고기위에 고기가 쌓이듯이 자신위에 타인이 함께 쌓이고, 남과 함께 어울리면서 서로 다른 문화들이 어떤 규칙없이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마치, 삼겹살을 굽듯이, 서로 어울려서 전체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문화 개념은 자식이 부모를 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자식이 부모를 업고 다니는 효(孝)는 바로 세대와 세대가 서로 연결된다는 깊은 뜻이 들어있다. 시간의 서로 다른 문화를 살아가는 자녀와 부모가 함께 연결되고, 공간의 서로 다른 문화를 살아가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서로 연결되어서 함께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다문화의 연결구조이다.
나이가 들어도 더 나이드신 부모를 걱정하고 섬기는 순수한 마음, 그것이 효도(孝道)이다.
문화가 달라도 다른 차이만큼 상대를 존중하면서 들어주고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다문화의 기본 인격이다.
결국, 다문화의 다른 언어는 ‘인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