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생활칼럼 / 장창훈]=이사를 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장안동에서 장안동으로 옮겼는데, 주소는 답십리로에서 천호대로로 변경됐다. ‘길’(路)을 따라 주소가 부여되는 새주소는 길 반대편으로 이사를 천호대로까지 명시했다. 나는 현재 천호대로 옆 장안동에 산다.
이사할 때마다 들었던 고민은 ‘짐’이다. 2년동안 살았던 그 전의 집에서 정리했던 책 200여권은 무엇을 버린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사는 책구매 버릇이 있어서, 책을 반드시 소유해야만 그 정보가 나에게 속한다는 강박관념이 책장을 가득 메우게 했다. 그렇게 사서 못 본 책이 수백권이고, 1권의 책을 읽는데 정독 시간으로 대략 3~4일이 걸리므로, 내가 산 모든 책을 보는데 인생이 부족할 것이다. 이사를 하기 직전, 이렇게 생각하면 꼭 필요하고, 저렇게 생각하면 중요하고….. 그렇게 쌓아둔 책들이 박스로 수십박스였고, 그 속에서 나는 질식하듯 웅크렸다. 그러다, 어느날, 나는 모든 책을 버렸다. 남겨진 것은 신앙과 관련되거나, 내가 지금 현재 살아가는데 필요한 책들이다. 그 외에 모두 버렸다. 버릴 때는 마음이 묵직했으나, 버리고 나니, 무슨 책이 나에게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한결 편하다.
새로 옮긴 집은 옷장이 없다. 옷장이 없어서 어떡하지, 나는 혼자서 고민했다. 옮기고 나서, 겨울에 입을 옷들을 남기고, 여름에 입을 옷은 박스에 정리하고, 그 사이에 어중간하게 남겨진 옷들이 몇박스다. 옷이나, 책이나, 매 한가지다. 옷을 입으면, 다른 옷을 입을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면, 결국 몇벌의 옷으로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일주일이 1년동안 52회 반복하고, 그렇게 100회가 반복되면 대략 100년의 인생이 흘러가는데, 결국 월화수목금토일의 7개 요일의 반복이다. 옷도 아무리 많아도 입는 옷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책처럼 옷도 버릴 것을 정리하니, 방이 넓어졌다. 도대체 3년동안 입지도 않은 옷을 나는 왜 아직도 가지고 있을까? 옷이 아까워서? 아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못해서이다. 칼로 오이를 썰 듯이 내 생각의 단면을 잘라내야만, 버릴 것을 버릴 수 있다. 버릴 것을 버리면, 남은 것이 더 가치가 있다. 모두 기회비용으로 얻어지는 소중한 가치다.
생활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비만(肥滿)은 살찜이 넘쳐나는 상태다. 얼마전,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만성소화불량은 소장과 대장의 기능 약화라기 보다는 많이 먹어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덜 먹으세요. 특히 기름기 있는 음식은 자제하세요”라고 하는데, “쿵”하는 마음의 충격이 있었다. 덜 먹으라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왜 먹어도 소화가 안될까, 그것이 나의 고민이었고, 연구주제였는데, 덜 먹으면 된다는 그 해답은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알려줬다.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적게 꼼꼼히 하는 생활의 다이어트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책을 많이 산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많은 시간 한다고 해서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밥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영양분이 모두 섭취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인맥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많음’보다 ‘버림’이 필요한 시대임에 틀림없다.
라면을 끓여 먹을 때는 냄비가 적격이지만, 마라톤처럼 인생을 꾸준히 살아가려면 가마솥처럼 지긋하게, 달팽이처럼 느리게 자세히 살아가는 생활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좀 늦으면 또 어떤가? 하루종일 빨리빨리 돌아다녀도, 결국 돌아오는 나의 집, 생활의 비만증을 없애려고 버림으로 살을 빼는 중이다. 꼭 필요한 것, 반드시 해야할 것, “소식(小食)”을 권유한 그 의사의 처방을 생활속에서 진지하게 실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