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요즘 나의 주된 관심사는 나의 글과 말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고 인식되고 교육받은 현 교육체제에서, 자신의 말을 자신이 관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언어습관이다. 날마다 거울보듯 자신의 말을 살필줄 알아야한다. 나의 요즘 주된 관심사는 생활 쓰레기 버리는 것과 나의 언어 관찰이다.
까페에 있다보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말들이 있다. 옆 테이블은 3~4번의 팀이 바뀌면서 늘어놓고 가는 대화의 핵심 주제를 요약해보면, 사람을 비판하는 것들, 직장을 비난하는 것들, 그것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그 밥에 그 반찬이라고 비난에는 갈채와 동감을 보내는데 인색하지 않다. 똘똘 뭉침은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은 집회의 자유같다. 나는 언제나 객관적 거리에서 관찰하는 관찰자 시점이므로, 끼어들기를 결코 할 수 없다. 단지, 나도 어디선가 그들처럼 남을 비판하다가 시간을 버리는 삶을 살까봐, 자리를 비우고 남은 테이블의 빈 컵은 항상 알바생이 치우듯, 나의 삶이 지저분하게 남겨질까봐, 걱정스럽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쉽게 안다. 누군가를 비난하면, 비난하는 그 상대가 그 사람의 성적표라고 보면 된다. 나는 항상 그렇게 생각하므로,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판할 때는 주의를 기울이는 습성이 있다. 언론인으로서 주도면밀하게 취재를 하고, 반론보도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최선의 주의를 기울이지만, 마지막 단추를 누르기 전에 실명은 항상 000으로 변경한다. 과연, 실명을 보도해서 공공의 이익에 얼마나 충족될까? 비난의 안주는 내가 그 객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음을 각인해야한다. 그래서 나의 요즘 주된 관심사는 나의 언어와 글과 말이다.
먹는 것이 그 사람의 건강과 소화력을 결정한다. 부부가 닮은 이유도 어쩌면 비슷한 식사습관 덕분일 것이다. 오이를 계속 먹으면 오이의 영양분이 골고루 전파되듯, 같은 것을 계속 먹으니 가족은 닮는 구석이 많다. 식사습관의 공통분모로 인한 공동체 연대이다. 먹는 것이 물질을 결정하듯, 사람은 듣는 정보습득이 사상과 가치관을 결정할 수 밖에 없다. 세뇌(洗腦)의 본뜻은 뇌를 씻는다는 의미로서, 물로 씻듯 사상으로 물들인다는 교육철학의 의미가 들어있다. 틀린 말도 계속 들으면 틀린 말이 뇌속에 스며들어서, 틀린 것을 익숙하게 받아드리면서, 결국 틀린 말이 틀리지 않게 인식되게 한다. 세뇌는 무서운 교육철학이다. 세뇌의 다른 이름은 곧 습관과 반복이다.
세뇌, 즉 습관된 사상은 말로 표현된다. 어쩔 수 없다. 북한에서 파견된 현송월이 여우 목도리와 세련된 패션을 입고 남한에 내려와 미인계로서 ‘북한의 군사정권’을 부드럽게 홍보했어도, 만약 현송월에게 마이크를 주고, 취재의 자유가 허용되었다면, 내면의 실체는 말로 드러났을 것이다. 침묵으로 덮여서 현송월 이미지는 보여지는 것으로만 그쳤을 뿐이다. 말은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결국, 자신이 누군지 알려면 자신이 하는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된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반응, 돌발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 반사신경처럼 튀어나오는 자신의 말과 행동언어를 관찰하면, 과거로부터 적분처럼 쌓여온 자신의 내면을 단면처럼 알아챌 수 있다. 가시처럼 돋힌 말을 내뱉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고쳐야할 ‘나의 숙명’일 것이다. 나에게 고쳐야할 1가지를 찾아야한다면, 나는 나의 말과 생활속 반사신경을 통해서 나를 관찰함으로 고쳐야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내가 불편하거나, 가끔 내가 편협하거나, 가끔 내가 불만을 토로할 때, 그때 나는 그러한 나를 자세히 관찰함으로 ‘나의 사상’을 자가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