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 / 장창훈]=오늘은 교회에 불참했다. 몸이 몸살에 시달리고, 정신은 세상적 어려움에 휩쌓여 과부하에 걸린 전기 차단기처럼 힘겨운 삶을 살다보니, 주일아침에 정신이 바닥에 드러 누웠다. 천장을 보면서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어서, 한동안 진공상태로 공허했다. 그러나, 스스로 그동안 삶을 돌이켜 보니, 나의 재주가 하나님의 말씀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사용되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특별하게 큰 일을 행하는 것은 아니어도, 내 삶속에서 나의 시간이 과연 하나님과 얼마나 연결되어 사용되는가, 점검하게 되었다. 물론, 지난번에는 성경과 연결된 책들만 남기고 대부분 서적을 정리한 적은 있다. 그렇게 정리했다고 나의 뇌리가 모두 하나님적으로 변화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습관은 관성의 법칙이 있어서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달이 오랫동안 지구를 공전하고, 지구는 47억년동안 태양을 공전하듯이 한번 정해진 습관의 공전은 달라지지 않는다. 달이 과연 어느날 화성을 돌아야겠다고 결심해도 그렇게 되지 않듯이 습관의 변화는 쉽지 않다. 나는 본래 신앙적 글을 많이 썻는데, 어느날 보니 세상적 글에 익숙하게 글을 쓰면서, 전혀 다른 색채의 글들이 나의 주된 주제가 되었다. 이는 옳지 않다. 뭔가 다른 변화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변화는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이사(移徙)를 하는 것도 짐을 꾸리고, 이사를 할 집과 계약을 성사하고, 다양한 행정업무를 처리해야하듯이 습관의 변경도 동일하다. 나는 오늘 곰곰이 나의 생활을 점검하였다. 나는 과연 지금 어떠한가? 나의 특기는 글쓰는 것인데, 특기가 주로 활용되는 곳이 세상적 책을 제작하는 일이다. 왜 그러할까? 대부분 어쩌면 그러했을 것 같다. 뭔가 탁월한 능력을 겸비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면서 막상 그러한 능력을 갖게 되면 그것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오늘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 우주창조 이후, 처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특별한 곳, 에덴동산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의 최초 약속을 받았고, 그 약속이 깨졌으나 그들의 자손을 통해 노아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면서 결국 하나님의 민족이 되었다. 약속을 받는 것보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오늘 말씀을 문서로 받아보고, 읽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렸다. 오늘 아침 내가 묵상하면서 내 삶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면서 반성의 얼굴을 닦았던 그 내면이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영적 장자권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더더욱 내가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받기 위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반성하였고, 내 삶속에서 내가 가진 특기와 재주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아가길 획기적으로 변혁하기로 작정하였다. 그 누가 내 삶을 개혁할 것인가? 그 누가 내가 사는 집안의 물건들을 옮길 것인가? 내가 먹은 밥그릇의 설거지는 내가 해야하듯이 내 습관은 내가 고쳐야한다. 책상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거나, 옷의 먼지를 제거하는 스타일러 신제품을 구입하여 설치하는 것이나, 가스렌즈 주변의 더러운 먼지를 제거하는 것,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것 등등 모두 내가 직접 해야하는 일이지,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가 없다. 하물며 내 생활습관의 변경은 오죽 하랴. 내가 해야할 일이다. 정신개혁은 곧 내가 해야할 책무이며, 의무이며, 결정사항이다. 나는 말씀을 읽으면서 고쳐야할 모순의 파란불을 건너기로 작정하였다. 그것은 내가 반드시 건너야할 요단강이므로,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약속의 요단강을 건너야하고, 그 약속의 요단강은 때로는 내가 고쳐야할 모순의 파도로 출렁거릴 수도 있으니, 나는 겸허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함으로 내 인생의 삶을 살아간다. 어떤 큰 일을 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특기로 하나님을 증언하고, 하나님을 믿는 내 삶을 고백하고, 그것으로 나의 삶이 하나님과 연결되었음을 입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시대는 결국 매개체의 시대, 미디어의 시대이므로, 나는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내가 숨쉬며 살아가는 날동안 끝없이 행하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누군가를 생각할 때, 나의 도움을 받고서 나와 전혀 연결되지 않게 그의 사업만을 추구하면서 나에게 정보를 요청할 때, 나는 상당히 불쾌한데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내가 하루를 살면서 과연 얼마나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살아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연결된 글을 쓰면서 살아갈까, 그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원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발견하였고, 영점조정을 하듯이 나를 고치기로 작정한 것이다. 영적 장자권을 회복한다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나는 내가 영적 장자권에서 멀리 있음을 인정하면서, 내 삶이 영적 신앙생활, 즉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을 탐독하고,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살아가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기로 결심한다. 과연, 촛불을 드는 것이 어찌 정치인들만이 하는 일이던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어찌 성직자들만의 일이겠는가? 내 삶의 영역에서 내가 반드시 해야할 일은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을 통해서 글을 쓰고, 성경을 통해서 내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어떤 목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다. 내 삶의 단상은 내가 지킬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시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해야할 책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