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 / 장창훈]=히브리서 13장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특히 공동체 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권면사항이 들어있다. 형제끼리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는 것, 손님을 융슝하게 대접하는 것, 부부끼리 화목하고 간음하지 않는 것 등등이다. 사랑의 자유가 무한대로 팽창한 현대사회에서 바람치는 것이 까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시대인데, 히브리서 13장에 걸리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혹자는 시대가 달라졌으니 성경말씀을 ‘각주구검’(刻舟求劍)처럼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간음하고 음란하고, 바람피는 것을 용납하는 하나님은 결코 아니다. 법률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단군왕검의 8조금법이나 십계명이나 그 근본은 동일하다. 아내를 사랑하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 질서이기 때문이다.
많은 책들은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우리가 성서를 읽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사서 읽는 목적은 무엇인가? 핵심은 구원의 알맹이다. 구원에 이르는 첩경은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구원의 가치를 진정 깨닫고 더 이상 죄악의 낙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죄의 습관을 스스로 벗어나야만 죄의 속박을 당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집트를 떠나라고 명령하셨고, 홍해를 가르셨고, 모든 탈출의 여건을 조성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기를 주저하면서 이집트에 남길 요청한다면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당시 남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어찌 되었는지 성경에 기록된 바는 없지만, 죄에 묶여서 살아가는 인생의 운명은 결국 죄의 열매를 먹을 뿐이다.
어떤 것을 하고,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하는가, 일일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거 2천년전 문화와 지금이 또한 다름으로 그것을 어떻게 재해석해서 실천할지는 각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양심으로 판단해야한다. 양심은 횡단보도의 신호등보다 더욱 분명하여서, 해야할 일은 파란불로, 금지하는 일은 빨간불로 각자에게 자각의 깨달음을 주실 것이다. 달팽이도 더듬이로 자신의 나아갈 길의 앞쪽을 알아채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이 영혼의 생명길을 모르겠는가. 스스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알면서 사망길을 고집하는 인생의 아둔함이 결국 영혼이 덫에 걸리게 스스로 방치할 뿐이다.
교회(敎會)는 교육하고 모이는 공동체 생활이다. 함께 모일 때는 자신을 낮추는 미덕이 필요하다. 더불어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조언과 인도를 순복하고 따르는 것이 선행되어야한다. 나보다 낮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존중하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니 그들의 말을 통해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3장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갖춰야할 인격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인이 갖춰야할 신앙적 인격에 대해서도 권면한다.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營門)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여러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탐식(貪食)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