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중국 공산당이 1950년대 ‘문화적 황금기’를 추구하기 위해 벌였던 문화운동으로 ‘쌍백운동’이 유명하다.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을 줄여서 쌍백운동이라고 한다. 공산당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토론문화의 활성화를 추구했지만, 1년동안 비판하는 지식인들을 선별하려는 정책에 불과했다.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은 상당히 좋은 정책인데, 악용당한 사례이다.
백가쟁명(百花齊放)은 백가지 꽃이 가지런히 피었다는 뜻이다. 꽃의 종류가 100가지인데 맘껏 피었는데 그 향기는 어지럽지 않다. 들과 산을 다녀보면 알 수 있다. 서로 생김새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고, 향기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데 모두 향기롭고 서로 어울린다. 이것이 백화제방이다. 특히 ‘放’은 ‘놓다’는 뜻이고, 제(齊)는 가지런하다는 의미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은 100명의 전문가들이 새처럼 울 듯 다툰다는 의미다. 백화제방은 자연만물이고, 백가쟁명은 새들의 울음이다. 자연을 보면, 나무와 꽃들이 모두 제각각인데, 서로 어울린다.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이고, 누가 꼴등이고, 그런 순위가 자연에는 없다. 순위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다. 새들도 순위를 놓고 나무를 택하지 않는다. 새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가 제각각이다. 종달새는 소나무 3번째 자리에 앉아야한다는 규칙이 없다. 법은 오직 하나, 울고 싶은 대로 우는 것, 날고 싶은 대로 나는 것이다.
까치는 까치 소리로, 까마귀는 까마귀 소리로, 종달새는 종달새 소리로,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새들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은 새의 울음소리로 다툰다는 의미로서, 자신의 개성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다양한 학문이 집대성되던 시기에 전문가들이 말로 왕을 설득하고, 각종 토론대회를 열었던 문화의 황금기를 대변하는 사자성어가 바로 백가쟁명과 백화제방이다. 그 핵심은 개성의 존중이다.
공산주의는 백가쟁명을 할 수가 없다. 진시황제가 춘추전국 시대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통일은 곧 획일화이다. 공산주의는 모든 의견을 하나로 일치시켜, 일사분란하게 정책을 실현하는 집단이다. “오직 앞으로”의 구호만 있다. 모든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은 공산주의에서 불가능한데, 모택동이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다가 낭패를 당하자, 그 책임을 오히려 비판한 지식인들에게 돌렸던 것이다. 1956년 쌍백운동을 도입한 모택동은 이듬해 1957년 비판적 지식인을 색출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55만명이 낙인찍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농촌으로 강제 추방당하고, 탄압이 시작됐다. 이후 중국은 절대로 속마음을 꺼내놓지 않고, 침묵의 겨울을 보내게 된다. 중국인은 겉으로 하는 말과 속으로 하는 말이 다르다. 그저 위에서 시키면 맹목적으로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비판했다가 결국 패가망신한 쌍백운동의 사건을 뼈속깊이 새긴 것이다.
쌍백운동 사건을 통해 본다면, 대한민국은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인가? 어떤 치명적인 명예훼손의 허위사실만 아니라면, 사회에 대해, 사건에 대해, 공직자에 대해 비판의 자유가 허용되니, 대한민국은 참으로 쌍백운동이 실현되는 나리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북한과 함께 만나 새로운 21C를 설계하고 있으니, 향후 30년을 넉넉히 살아간다면 엄청난 변화를 목격할 것 같다. 北은 서로 등을 돌린 모습이고, 化는 등을 올린 사람과 서로 마주보는 모습이다. 北이 化로 바뀌었으니, 진정한 변화(變化)가 도래한 것이 분명하다. 온갖 꽃들이 피고, 다양한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한반도의 이상세계가 펼쳐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