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하나님의 역사는 상징이다. 상징은 ‘모델’이다. 다른 말로 ‘닮은꼴’이며, ‘축소확대’이다. 순천고등학교 2학년때 배운 성경말씀이다. 나는 중학교 2학년때 동강중학교 수학대표로 경시대회에 출전해서 2등을 했던 적이 있다. 수학에 감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때 들었던 축소확대의 원리가 감명깊은 성경의 진리로 자리 잡았다. 축소확대는 ‘지렛대 원리’와 연결된다.
사람들은 ‘나폴레옹’과 ‘히틀러’와 ‘알렉산더’와 ‘진시황제’와 같은 영웅을 꿈꾼다. 진시황제가 과연 천하통일을 하고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평화의 세계가 오지 않고, 오히려 지식인 숙청의 시대가 도래했다. 히틀러, 나폴레옹도 그러했고, 항우를 격파한 유방이 천하를 손에 넣자, 한신을 토사구팽(兎死狗烹)시켰다. 영웅이 권력을 장악하면 공포정치가 시작되면서 암흑의 시대가 열린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의 영웅처럼 오지 않고, 겨자씨처럼 시작한다. 한 사람이 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세상적으로 큰 업적을 나타내지 않아도, 그저 하나님과 관계를 연결하고 삶을 마감한다. 그 사건이 곧 기점이 되어서 세상은 뒤바뀐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이다. 신약의 예수님 탄생과 십자가 사건이 특히 그랬고, 루터의 종교혁명이 그러했고, 수많은 종교사적 사건들이 그러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의 가문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한다고 되어 있다. 다윗은 곧 군인이요, 시인이요, 작곡가요, 종교가요, 왕이요, 건축가요, 도망자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예수님이 다윗의 뿌리였고, 그 예수님이 “다시 오리라”고 요한계시록에 예언되어 있다. 창세기는 세상을 창조한다는 내용이고, 요한 계시록은 창조한 그 세상을 파괴하고 재창조한다는 내용이다. 재창조는 곧 신약의 끝에 일어나는 종말이다. 재창조의 설계도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진행된다.
왕이 왕명을 비밀리에 보낼 때, 마패를 주고 암행어사를 보낸다. 암행어사(暗行御史)는 곧 어두운 중에 행하는 임금의 심부름꾼이다. ‘어둠속에 행한다는 것’은 세상속에 드러나지 않게 다닌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특히 그렇다. 루터를 우리가 선지자라고 믿지만, 그 당시 루터는 그저 대학교 교수에 불과했고, 교황에게 낙인찍힌 이단이요, 마귀였다. 교황의 낙인은 곧 지옥에 갈 운명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이 볼 때 어둠속에 처해서 살아간다.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는 표식은 무엇인가? 마치 마패(馬牌)처럼 뭔가 알아볼 암호가 있어야한다. 그 암호가 예언서이며, 닮은꼴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상징으로 탄생했다.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고, 요셉도 다윗의 후손이었다. 청소년기 시절의 예수님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십자가 사건을 통해 유추하면 예수님은 핍박의 인내를 견디면서 살아냈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긴 연단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구약의 예언이 이뤄진 시대를 신약이라고 한다. 신약의 예언이 이뤄지는 시대, 즉 재창조가 시작되는 시대를 성약이라고 한다. 성약의 주인이 곧 다시 오실 그리스도이다. 그는 어떤 암호를 가지고 올까? 다윗의 상징성으로 오는 것은 상식이다. ‘다윗의 상징성’이라고 하니, 혈통적 다윗의 가문에서 온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예수님은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새롭게 오는 시대에는 ‘다윗의 삶’을 따라서 오는 것이 이치에 맞다. 예수님은 “열매 맺는 백성에게 포도원이 돌아간다”고 했다. 그처럼 다윗의 삶으로 오는 것이다.
다윗은 대한민국의 이순신 장군과 연결된다. 이스라엘이 다윗을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꼽는다면, 대한민국은 충무공 이순신을 그렇게 생각한다. 광화문 한복판에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기념 동상으로 존재한다. 사람들이 세운 동상이지만, 그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다. 의미없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리 만무하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을 무찌른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은 일찌감치 일본의 속국이 되었고, 우리는 일본말을 쓰면서 지금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를 남겼다. 이는 전쟁의 기록이며, 성경적 언어로 풀이하면 ‘십자가의 기록’인 것이다.
1945년은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지 400년이 된 해이다. 대한민국은 그해 일본의 속국에서 해방됐다. 정명석 목사님이 태어난 해이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배신자들이 생사를 넘나들던 암울한 시대였다. 1945년 UN이 창설됐다.
다윗의 삶으로 온다는 것은 ‘다윗의 업적과 특기’로 온다는 것이다. 다윗은 돌팔매로 골리앗을 물리쳤고, 그 사건으로 국운(國運)을 다시 일으켰으나, 국가로부터 모함을 받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정명석 목사님이 그러한 삶을 살아냈다. 세상이 알던지, 모르던지, 김일성의 전쟁선포와 관련해 기독교복음선교회는 당시 진실로 기도했고, 이후 김일성 사망사건이 일어났다. 기도의 돌팔매로 민족의 국운이 되살아난 것이다. 다윗이 국가를 구한 일등공신이었으나, 그 사건으로 도망자 신세가 되듯, 정명석 목사님도 기독교의 모함을 받고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
다윗의 또 다른 특징은 시인이며, 작곡가이며, 건축가이다. 다윗은 건축가였으나, 하나님이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아서 건축자금만 모아놓고 솔로몬에게 건축역사를 맡겼다. 허락했다면 다윗은 엄청난 성전을 건축했을 것이다. 다윗은 허락을 받지 못했으나 정명석 목사님은 자연성전의 구상을 받아서 돌조경 건축물로 성전을 완공했다. 새들과 꽃들과 소나무들과 물고기들이 성전안에 속하는 신비한 자연속 자연성전이다.
정명석 목사님은 영감의 시를 쓴 시인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요, 120곡 이상의 성가(聖歌)를 작곡한 작곡가요, 고역의 십자가 기간을 보내는 10년 동안 설교말씀을 직접 집필한 문학가이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쓰듯 옥중서신으로 설교말씀을 기록했다. 모든 십자가 사건이 끝난 해가 2018년이다. 1945년은 탄생, 1978년은 선교활동 시작, 2018년은 새로운 선교 시작의 기점이다. 1945년에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일본식민지에서 광복을 맞았다. 1978년에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서울의 봄,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2018년 분단의 북한과 극적인 평화회담이 열렸다.
과학시간에 어떤 과학교사가 말했다. “지렛대만 있으면 지구도 들 수 있고, 태양도 움직일 수 있다”라고. 지렛대에는 버팀목이 필요하다. 지렛대는 곧 하나님의 능력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지구촌에 큰 역사를 행하실 때, 반드시 하나님의 사람을 버팀목으로 삼고서 행하신다. 1945년과 1978년과 2018년은 부인할 수 없는 버팀목의 표적이니, 하나님이 분명 대한민국을 보호하심을 확실히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만남에서 맨 먼저 했던 일이 방북 10초였다. 11년간 끊긴 남북회담이 이어진 순간, 10초의 방북이 있었다. 그 10초가 확대해서 누군가의 눈물속 10년임을 누가 알랴!! 사람이 행하는 듯 하여도 모두 하나님이 상징으로 족적(足跡)을 남겨 아는 자들에게 표적(表迹)으로 말하는 것이다. 11년은 남북이 끊긴 기간이며, 또한 중국 10개월과 한국 10년이 합해진 11년 십자가 기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영웅을 꿈꾸지만, 영웅이 지배하면 중국의 시진핑이 다스리는 공포정치가 펼쳐진다. 하나님의 역사는 영웅으로 오지 않고, 지렛대의 버팀목으로 펼쳐진다. 축소확대의 원리로서, 하나님의 사람이 성경의 비밀을 풀면서 그 말씀대로 삶을 살아내면, 그 조건을 통해 민족과 세계가 점점점 변화된다. 지렛대의 버팀목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자는 알고, 모르는 자는 모른다. 알든 모르든, 세상은 버팀목의 지렛대로 점점점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대통령도, 트럼프도, UN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버팀목으로 삼아 지렛대 원리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를 운행하는 깊은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