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고토(甘呑苦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이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이익과 의리에 있어서 ‘자국의 이익, 개인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잘못된 인간군상을 비판하는 말이다. 개인에 있어서 ‘공동체의 이익’이 중요함을 말하고, 자국에 있어서 ‘지구 공동체의 이익’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감탄고토(甘呑苦吐)는 자신에게 쓴 맛이어도 간혹 삼킬 수 있어야한다는 뜻.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를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나에게 이익이 없는데 내가 그것을 한다?? 과연 그러한 사람이 있는가? 재건축재개발 업계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할때, 조합장들이 한결같이 “무료봉사로서 개인의 이익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조합원 전체를 위해서 희생하려고 조합장에 출마했다”고 말들한다. 나는 그러한 조합장을 볼 때마다, “조합 자체가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서 모인 단체인데,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봉사를 하려면 차라리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던지…..
조합장의 임무는 자신의 이익과 더불어서 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다. 자신이 손해보는 것이 마치 희생의 숭고한 의미로 착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더불어서 ‘월급 한푼 안받고’라는 말도 안된다. 돈도 안받고, 무일푼의 경영을 할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조합원들의 이익을 어떻게 극대화시켜서, 그것에 대한 인센티브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경영설계를 해야하는 것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는 너무 지나친 ‘단 것 좋아하기’ ‘쓴 것 배제하기’를 비판하는 사자성어같다. 단 것만 좋아하면 당뇨병에 걸린다. 단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칭찬’만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판을 두려워하면 발전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비판만을 받게 되면 성장이 멈출 수도 있다. 적당한 비판과 함께 자기반성을 해야만 모순을 고치면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단 것은 칭찬, 쓴 것은 비판을 뜻한다.
나는 단 것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단 맛은 포도당을 느끼는 맛이어서 사람의 몸에 좋은 것이 들어있다. 이처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쓴 맛은 독극물(毒劇物)이 대체적으로 갖고 있는 맛이다. 이처럼 비판과 비난은 상대방의 마음을 해치는 ‘독(毒)’이 있다. 독도 잘 다스리면 유용하다. 그처럼 비판과 비난도 완전히 무시할 것은 아니다. 비판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순을 고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감탄고토(甘呑苦吐)의 한자해석은 다음과 같다.
감(甘)은 혀가 단 것을 삼킨 모습이다. 혀 설(舌)과 비교해보면 혀가 안 쪽으로 들어가 있다. 사탕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다.
탄(呑)은 ㅁ(사탕)을 목구멍에 완전히 넘긴 모습이다. 삼킬 탄이다.
고(苦)는 발음기호가 [古]로서, 오래된 (古) 풀(草)로서, 씀바귀처럼 쓴 맛을 말한다.
토(吐)는 발음기호가 [土]로서, 흙위에 뭔가를 토한 모습이다. 또는 사람이 흙을 먹고서 입에서 퇴퇴하는 모습이다. 흙은 먹을 수가 없고, 토하는 것은 흙위에 한다.
*** 자기에게 큰 이익이 없는 것 같아도, 혹은 자기에게 손해가 나는 일인 것 같아도, 남을 위하는 일이 곧 자기를 위하는 일인 것도 있다. 쓴 약이 사람 몸에 좋다고 했다.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는 쓴 것도 삼킬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독(毒)이면 뱉어야 하고, 그것이 약(藥)이면 삼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생의 삶에서 모든 사건이 그 내용을 분별하면서 결정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