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영국은 현재 교회가 술집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 신앙이 점점점 흐려지므로, 교회가 운영에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경매에 넘어가니,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할 때 성전기명이 술잔으로 사용되듯, 교회 성전이 술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EU의 중심국가였던 영국이 브렉스트로 독립은 했으나, 신앙적 측면에서 영국은 암울할 뿐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EU 전체가 전반적으로 그러하다.)
서울에서 나는 성전건축에 성도로서 참여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여건에서 모든 것을 했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도 그러했고, 액수의 크고 작음은 모두 달랐으나, 각자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내가 아는 어떤 집사님은 딸들의 이름으로 각각 성전건축 헌금을 하기도 했다. 딸들이 아직 신앙의 깊이가 없지만, 훗날 성장했을 때 딸들에게 신앙의 축복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에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섭리사 성도의 마음이 얼마나 순결한지, 깊은 감사가 나왔다.
지금도 기억난다. 성전건축을 위해 모임을 했을 때,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었다. ‘무리수’와 ‘감동’의 그 경계선에서, 나는 ‘사랑의 마음에서 출발하는 진실한 감동’이라는 성전건축 책임자의 말이 감동으로 와 닿았다. 나는 그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행하리라”고 결단하고, 당시 통장의 현금을 모임 직후 송금했었다. 사람의 마음이 변화무쌍하니, 감동이 왔을 때 그냥 실천한 것이다. 1주일 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건축헌금의 액수만큼 들어왔다. 그 돈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또 건축헌금으로 송금했다. 내가 나의 하나님께 떳떳한 것은 그것이다. 건축헌금의 금액으로 논한다면 경제공적자에 들 정도는 아니지만, 나의 하나님께 내가 할 수 있는 진실한 행위로서 나는 실천했다. 그때 그 사건만 생각하면 나는 정말로 “잘했어!! 장창훈!!”이라고 스스로 칭찬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생명성전과 교회성전 2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정명석 목사님도 성전건축에 대해 “교회성전과 함께 각자 생명성전 관리에 신경써야한다”라고 말씀했다. 이번 주일말씀에서도 “하나님은 곧 지구와 같다”라는 말씀과 함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사람은 생명의 성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몸된 성전이며, 교회는 생명성전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을 구성하는 것이다. 마치, 국가(國家)는 나라 국(國)과 가족 가(家)로서 가족이 모여서 국가를 이루듯, 생명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노아시대, 함은 노아의 둘째였다. 함은 노아의 저주를 받았다. 그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다. 함은 메소포타미아 근처에서 서쪽으로 이주해, 가나안땅에 정착했다. 함이 가나안을 먼저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이사를 하게 하고, 그곳에 거주하면서 ‘신앙의 조건’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재물로 바친 그 사건을 기점으로 ‘믿음의 기준’이 되었다. 믿음의 기준을 세운 그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몸이 된 것이다. 믿음은 마음과 행위의 결합체임을 알아야한다. 믿음없는 행위는 가식이고, 행함없는 믿음은 말풍선에 불과하다.
아브라함의 믿음조건에서 1천년이 지난 때, 비로소 다윗이 나타나 국가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은 엄청난 건축자금의 금궤를 솔로몬에게 물려주고 죽었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이 건축되었다. 그리고, 1천년이 지나고 예수님이 탄생할 즈음, 헤롯이 분봉왕으로 성전을 건축했다.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사연이 있었던 그 모리아 산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졌다. 이는 성전의 주춧돌이 생명의 성전임을 의미한다. 다윗의 건축자금과 솔로몬의 행정지시로 솔로몬 성전이 완공되었어도, 그 주춧돌은 아브라함인 것이다. 이 시대 역시 동일할 것이다.
위대한 헤롯 성전은 AD 70년에 초토화됐다. 십자가 사건 이후 40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흔적조차 찾을 길 없이 로마의 티토 장군이 짓뭉개버렸다. 이스라엘 독립군의 저항운동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육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육체가 곧 성전의 주춧돌인데, 그 주춧돌이 빠졌으니 성전은 무너지는 것이다.
성전건축에 임하는 근본자세는 아브라함처럼, 자신부터 절대믿음과 절대사랑의 생명성전이 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하는 곳이다. 애인에게 줄 선물을 살 때는 가장 행복한 마음으로 고르고 골라서 준비하듯이, 그 사랑의 마음에서 출발해 성전건축에 임해야한다. 솔로몬 성전이 모리아산에 세워진 사연, 헤롯 성전이 멸망당한 사연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성전’을 성전건축의 주춧돌로 삼으심을 반드시 깨달아야할 것이다. 내 안에 하나님을 모심으로,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듯,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