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성와 예술성과 활용성의 야심작
[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전문가(專門家)는 한 분야에서 가문(家門)을 이루듯 큰 업적을 이룬 인물을 뜻한다. 전문가는 하는 것도 다르고, 사는 것도 다르고, 노는 것도 다르다. 일반인과 전문인의 차이는 생각과 행위와 업적에서 확연히 다르다. 어쩔 수가 없다.
전(專)은 오로지 전(專)이라고 하는데, 물레를 본떴다. 밑의 寸은 손(十)을 뜻한다. 十은 두 손을 의미하며, 손가락이 10개라서 ‘10’을 말한다. 專은 곧 베틀을 짜고 있는 어머니의 손길이다. 요즘 말로 번역하면, 패션 디자이너다. 수공으로 옷을 만들던 그 시기엔 어머니의 야근이 옷을 만들었다. 베틀의 또 다른 특징은 한쪽 방향으로만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시계처럼, 베틀은 한쪽으로만 움직인다. 전문인은 오로지 자기 분야로만 살아온 사람이다. 나무의 줄기가 솟으면, 가지가 뻗는다. 가지의 뻗음처럼 전문인은 특정분야의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다.
나는 전문인을 좋아한다. 그 분야에서 열정으로 살아낸 삶의 결과를 업적으로 볼 때마다 감탄사가 쏟아진다.
내가 잘 아는 어떤 교수님은 국제사회 문화교류 전문가이다. 그녀는 모든 사람과 사물의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眼目)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녀를 취재한 인터뷰 기사에 대해, 나에 대해 조언을 해줬던 이야기가 있다. 나의 내면을 모두 들여다보는 멘토링을 들으면서,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통찰력을 가진 전문인’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녀에게 그런 통찰력의 안목이 생긴 것은 수천명, 수만명의 서류를 검토하면서 사람을 파악하는 눈이 떠진 것이다.
얼마전, 내게 카톡으로 인사를 청한 도예가가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내가 쓴 기사를 읽고서 좋으셨던 것 같다. 그 도예가는 40년 넘게 도자기를 빚어왔고, 시인으로서 창작활동도 하면서 외부 전시회를 통해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사회에서 얻은 명예와 작품성은 대단했다. 그 분야 전문인은 이처럼 다르다.
내가 아는 어떤 화가는 다작(多作)으로 유명하다. 화실에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 창고에 올려진 그림들을 봤는데, 수량이 셀 수가 없었다. 화실 바닥에는 작업중인 작품들이 10점이 넘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 화가는 많이 행함으로 새로운 기법을 발견하고, 새로운 기법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더 많이 만들면서 그 위치에 도달했다. 전문가는 역시 다르다.
건축 전문가와 조경 전문가들이 월명동에 방문하면, “엄청난 돌과 엄청난 소나무와 엄청난 정원”에 휘둥그레한다. 돌의 개수에 먼저 압도된다. 내가 아는 신앙의 친구가 조경 전문가를 월명동에 모시고 왔는데, “그 조경 전문가라 말하길, 세상의 좋은 돌은 모두 여기에 모여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번에 보고 전문가를 알아본다. 어쩔 수가 없다.
전문가(專門家)가 되는 길은 점점점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천국은 겨자씨와 같다”라고 말씀했다. 전문가는 겨자씨에서 출발한다. 처음엔 작다. 작은 일을 계속 반복해서 하다보니 커진 것이다. 처음부터 큰 것은 없다. 물론 금수저를 물려받은 대기업 자녀들은 경제적 관점에서 나무를 물려받은 것이겠지만, 그것은 외형일 뿐 각자 인생의 전문분야는 서툴고, 미숙하다. 자꾸 하다보니, 잘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평창동에 사시던 때, 그는 돌을 쌓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월명동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돌을 지금처럼 웅장하게 쌓은 것이 아니다. 5번 무너지면서, 점점점 돌건축 공법이 발전했고, 지금은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보좌’ 디자인 작품을 완공했다.
조선말에 유행했던 최고 사상이 실학(實學)이다. 성리학(性理學)이 이론의 학문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민생문제가 갈수록 쌓여가자, 지식인들이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서 ‘실학사상’을 연구 개발 보급했다. 실학(實學)은 실생활 학문을 뜻한다. 경험에서 출발하는 학문은 어떤 이론가보다 위에 있다. 위대한 전문가는 기존의 학문을 초월해서 새로운 분야를 집대성한다.
세상 돌조경 전문 건축가들이 월명동에 와서 ‘안전한 건축 공법’에 입각해서 돌을 눕혀서 쌓기를 고집하자, 그는 돌을 세워서 쌓길 원했다. 돌조경 전문 건축가들은 돌을 세워서 쌓는 것은 위험해서 못한다고 했다. 돌을 세우는 것은 건축공법에서 상당히 어렵다는 뜻이다.
돌조경 건축공법은 안정성 때문에 앵커작업을 정말로 많이 한다. 폭우가 쏟아질 때 토사가 떠밀려서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배수로 작업을 비롯해서 다양한 장치를 설치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돌조경 건축도 산기슭에 할 경우 얼마나 어려운지, 그 분야 전문가들은 안다. 돌위에 돌을 올려놓는다고 그것이 고인돌처럼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는 안정성와 예술성과 활용성의 3가지 조건을 완벽히 추구하는 야심작을 완공했다. 경험 전문가는 이론 전문가들과 차원이 다르다. 구약의 선지자 수십명과 예수님이 다르듯 그렇게 다른 것이다.
안정성의 공법은 기존과 다르다. 기존 건축공법은 돌에 앵커를 박아서 땅에 고정한다. 그렇게 설치하는 공법은 작업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앵커 자체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반면, 그는 각 돌마다 자갈을 깔고 밑바닥 공사를 완벽히 한 다음에 돌을 올리고, 차곡차곡 올릴 때마다 돌과 돌이 맞물려서 바위의 무게가 분산되도록 하면서도 그 바위가 자체적으로 설 수 있도록 밑바닥 공사를 완벽히 했다. 나무는 줄기만큼 뿌리가 깊듯이, 돌은 보여지는만큼 밑이 들어가 있다.
예술성은 돌 자체의 예술성과 전체 돌조경 건축의 예술성이 있다. 예술성은 모두 4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형상석을 배치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자는 피카소 바위로 불릴 정도로 추상화가 표현되어 있다. 각종 형상석이 야심작에 보란 듯이 서있다. 둘째로 이끼로 만든 그림 예술이다. 바위에 이끼가 끼었는데 그것을 오랫동안 닦지 못했다. 그 이끼를 자연스럽게 활용해서 돌마다 신비한 그림들이 그려지도록 연출했다. 이끼가 남겨진 부분이 양각 기법으로 그림이 되었다. 셋째로 눕힘과 세움의 반복을 통한 예술성이다.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거의 대부분 돌조경이 눕혀서 쌓았다. 그냥 사람이 앉을 정도로 만든 것이다. 돌을 세우면 위험하고, 세우는 공법도 위험해서 못한 것이다. 반면, 월명동은 눕힘과 세움의 반복을 통해 단조롭지 않은 세련미를 형성하고 있다. 넷째로 야심작 전체 디자인이 ‘하나님의 보좌’ 형상이다. 야심작 전체가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피카소 돌을 등받이로 해서 하나님의 의자 형상이다.
활용성은 사람과 나무의 활용성이다. 돌조경 곳곳에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조경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따로 국밥은 나무와 돌조경을 각각 배치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조경건축이다. 수소와 산소가 각각 따로 있으면 수소와 산소다. 둘이 결합하면 물이 된다. 남자와 여자가 따로 있으면 각각 존재한다. 둘이 결합하면 생명이 창조된다. 바위와 나무가 결합하는 것은 조경의 화룡점정과 같다. 둘이 완벽히 결합한 바위위 소나무는 가격이 2~3억원에 달한다. 야심작은 돌과 돌 사이에 작품성있는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돌조경이 소나무를 위해 활용된 것이다. 게다가, 야심작은 운동경기가 펼쳐지면 순식간에 관중석이 되고, 예배가 시작하면 순식간에 장의자가 되고, 예술무대가 펼쳐지면 순신간에 객석이 된다. 때로는 돌조경 위에서 성가대가 운집해서 찬양을 하기도 한다. 웅장한 성가곡이 월명동을 감흥시킨다. 야심작의 활용성은 큰 행사가 개최될 때 최고조에 이른다. 바로 하나님께서 좌정하시는 하나님의 의자로 사용된다. 이보다 큰 활용가치가 또 어디에 있는가?
그는 돌조경 최고의 전문 건축가이며, 조경 예술가임을 더욱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