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시대는 어디에 예언되었나?
[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 / 장창훈 기자]=사람들은 성경을 대충 믿는다. 자세히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새롭게 인식된다. 구약과 신약, 신약과 성약의 관계가 그러하다. 혹자는 ‘성약의 존재’에 의문을 제시한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는 ‘성약’과 비슷하다. 성약(成約)은 약속을 이루는 것이다. 구약에 예언한 것이 신약시대에 이뤄졌으니, 신약은 ‘구약의 성약’이다. 구약과 신약과 성약은 사람의 인식이 구분한 언어의 명칭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예언하고, 그 예언을 성취하는 기점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0월 10일 10시에 장안평역 3번출구 스타벅스에서 만나자”라고 했고, 그날 10시에 만났다면, 약속이 이뤄진 것이다. 예언(豫言)은 미리 말하는 것으로 ‘약속’의 의미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신뢰성 100%의 절대자이시니, 예언은 곧 성취와 같다. 그런데, 왜 유대인은 예언이 성취되지 않았다고 할까? 성취되지 않은 것인가? 여기서 성경해석의 관점이 나오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은 성경이 나뉜 것이 아니다. 성경해석이 나뉜 것이다. 마치 법률은 같고, 법률해석으로 원고와 피고가 다투는 것과 같다. 유대인의 정경이 천주교와 기독교가 동일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쉽게 말해서, 구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 즉 유대인이 기다린 다윗 왕조의 계승자가 예수님이라고 믿는 부류가 천주교이고, 기독교이다. 믿지 않는 부류는 유대인이다.
정확하게 논하면, 유대인 안에서 두 부류로 갈렸다.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소수의 유대인이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을 이룰 메시야’라고 믿었고, 대부분 유대인은 믿지 않았다. 이것과 관련해서 ‘유대인과 기독교의 교리비교’를 들어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성약’을 이야기하면, 혹은 ‘신부의 시대’를 이야기하면, 성경적이냐고 반문한다.
유대인이 예수님께 던졌던 그 비수(匕首)의 질문과 같다. 유대인은 예수님께 “네가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다. 구약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는 시대였는데, 어찌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모세조차 하나님을 ‘주’(主)로 모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니, 당시 정경인 구약에 예언되지 않은 사건이었다.
우리는 예언(豫言)은 너무 맹신하는 오류를 범한다.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서 “무당이 맞췄다. 족집게다”라면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비유이거나, 확률게임일 때가 많다.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맞춘 자들도 그 대통령이 무엇을 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예언이 설령 적중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극히 일부의 사건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펼친 정책은 수천가지에 달한다.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는가? 그러한 세세한 것까지 과연 예언할 수 있을까? 못한다.
예언은 약속과 같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려고 하면, 날짜와 시간과 만남의 목적을 약속할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약속하지 않는다. 가령, 10월 10일 10시에 만나자고 하면, 만나서 마실 음료를 주문할 것이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것이고, 입고갈 옷도 그때 준비할 것이고, 만나는 시간동안 말하고 듣고를 반복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미리 약속하지는 않는다. 약속할 것이 있고, 약속을 이루는 만남의 장소에서 행할 것이 있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이다.
가령,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다고 하자. 1달 뒤에 열리는 그 연주대회를 홍보하는 팜플렛을 만드는데, 그 팜플렛에 공연내용을 모두 담을 수 없다. 단지, 오케스트라를 소개하고, 연주가 펼쳐질 장소와 날짜가 담긴다. 자세한 내용은 현장에 참석하면 모든 것이 드러난다. 이것이 예언이다. 예언은 곧 광고요, 홍보요, 미리 잠깐 보여주는 것이다.
구약은 신약에 대해 극히 일부분을 보여주고, 구약은 구약 나름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뤘다. 아브라함이 살던 그 시기는 한반도에 단군왕검이 통치하던 시기다. 단군왕검을 시작으로 하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결코 하나님의 정경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이스라엘을 통해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약은 구약의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뤘고, 신약도 마찬가지다. 신약에 예언된 성약시대는 ‘내가 다시 오리라’는 그 재림의 약속이 성취되는 때이다. 그 시대가 언제일지 성경을 통해서 상고할 것이고, 중요한 것은 예언된 시대가 도래하면, 비로소 성약 시대의 새로운 일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설계도는 하나의 예언서와 같다. 설계도 안에는 부품을 담을 수도 없고, 땅도 담을 수 없다. 설계도가 모두 완성되고, 건축인가가 떨어지면, 비로서 착공이 시작될 것이고, 건물이 완공될 때 모든 것이 새롭게 펼쳐질 것이다. 게다가 설계도 안에는 새롭게 지어질 건물에 살 사람들이 그려지지 않는다. 설계도는 미래에 지어질 건물을 개략적으로 그려놓을 뿐이다. 모든 건물이 완공되면, 설계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약속을 하고, 약속한 시간에 만날 자를 만났다면, 약속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이미 만났다면, 그 약속은 과거가 되므로, 새로운 약속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성약이다.
구약의 어느 곳에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된다고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십자군 전쟁이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사도바울이 신약성경의 편지 14권을 집필한다고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빌라도가 손을 씻는다고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로마교황청이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네로황제의 로마 대화재가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콘스탄틴대제의 기독교 공인이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이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히틀러의 자살이 예언되었는가? 구약의 어느 곳에 냉전이 예언되었는가? 구약과 신약 어느 곳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예언되었는가? 예언된 곳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의 그리스도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이 시대도 그러하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잠시 광고한 것임을 분명 인정해야할 것이다. 그렇게 인식하면 모든 사건과 사연에 대한 이해가 쉽게 일어난다.
구약과 신약, 신약과 성약은 밀물과 썰물의 관계로 이해해야한다. 인류문명의 대변혁 사건으로 이해하면 쉽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인류문명의 3가지 개혁사건은 신석기 시대, 산업혁명, 정보혁명의 시대이다. 신석기 시대는 정착생활로 인해 생활터전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에는 산과 강을 따라서 열매를 따먹고 짐승을 사냥하는 수렵채집 활동을 했다. 신석기 시대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가축을 키우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은 농업중심 생활이 상업중심 생활로 이동한 사건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류문명은 거대한 변화를 이뤘다. 채집활동을 하던 구석기 시대와 재배활동을 하는 신석기 시대가 전혀 달랐듯이,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생산하는 상품의 물량이 완전히 달라졌다. 정보혁명도 마찬가지다. 상품이 가치의 척도인 산업혁명 시대와 정보가 가치의 척도인 정보혁명의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수렵채집의 관점에서 동물을 기르거나, 농사를 짓는 것을 비판하면 어리석은 것이다. 또한 농사짓는 관점에서 공장을 비판하면 어리석은 것이다. 이와 같이 구약은 신약의 새로운 사건을 이해할 수 없다. 문명의 진화처럼 하나님의 역사도 진화의 방향을 발전하고 있음을 지혜로 판단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이 질문에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예수님은 AD 0년에 탄생했다. 엄밀히 논한다면 BC 3년 탄생설이 유력하지만, 상징의 기점으로 AD 0년을 예수님의 탄생으로 본다면, 구약의 인물이 족보를 통해서 나이가 나와있다. 나이를 역계산으로 환산하면, 아담과 예수님의 기간차이는 4천년이다. 구약을 4천년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신약은 2천년으로 보는 것은 천주교가 1600년간 성장했고, 이후 루터와 칼빈이 종교혁명가의 선지자로 출현해서 인류문명에 대개혁을 선언했다. 구약이 4천년, 신약이 2천년으로 추정하는 것은 창세기의 창조 7일 설계도에 근거한 것이다. 4일-2일-1일(구약-신약-성약)으로 총 7일-7천년으로 계산되면 하나님의 종교역사 프로젝트는 시간표가 완벽하다.
물론, 구약이나 신약에 “하나님의 종교역사 시간표는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성약 1천년으로 총 7천년이며, 창세기 창조 7일의 창조원리에 따라 설계되었다”라고 적힌 것은 아니다. 구약에 “예수님은 신약의 그리스도이다”라고 적혀있는 문구가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은 신약의 그리스도이다”라고 인정하듯이, 성경을 토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추정하여 알게 된 지식도 성경에 속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 위 내용은 정명석 목사님의 성경강의를 통해서 배운 것을 편집해 설명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