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신앙칼럼 / 장창훈]=성령(聖灵)은 성결의 영으로, 하나님의 상대적 천모의 신이다. 가정으로 보면 하나님은 아버지, 성령님은 어머니, 성자는 형의 위치다. 인간은 둘째 아들 또는 둘째 딸의 입장이다. 성자는 형제의 입장처럼 친밀하고, 다정다감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나님은 엄격하고, 가부장적 제도처럼 천법으로 다스린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중심을 잡지 않으면 가풍이 흐믈흐믈하다. 어머니는 보듬는 역할이다.
父는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母는 아이를 보듬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매를 들어서 아이를 훈육했고, 어머니는 팔로 안아서 아이를 양육했다. 아이를 기르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 비타민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의 서로 다른 양육방법이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뼈는 딱딱하지만 전체 틀을 잡아주고, 살은 부드러우면서 뼈에 형상을 입혀준다. 그렇게 아버지의 엄격한 법이 틀이 되고, 어머니의 온화한 사랑이 살이 되어서 아이는 점점점 온전한 사람이 되어간다.
새벽말씀에서 “성령은 감동으로 말씀하신다”라고 하셨다. 종은 종소리로 말한다. 호랑이는 호랑이 소리로 말한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 경찰은 조서로 말한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새는 새소리로 말한다. 미국인은 영어로 말한다. 한국인은 한국어로 말한다. 축구는 공으로 말한다. 지구과학은 화석으로 말한다. 우주과학은 빛으로 말한다. 계절은 자연으로 말한다. 이처럼 모든 사물과 사건은 말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까치는 까치 소리로, 까마귀는 까마귀 소리로 말한다. 성령님은 성령님의 방법으로 말한다. 성령님의 방법을 알면, 그 방법으로 말할 때 성령님이 행하심을 알 수 있다. 영어를 배우면 영어가 들릴 때 그 뜻을 알 수 있듯이 그렇다.
성령님은 감동으로 말씀하시니,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강열한 감동이 들 때 그것은 성령님이 행하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행한 일이 정말로 많고, 그 일을 행함으로 얻은 것이 많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일은 여러 가지다. 먼저 만물을 보여서 알게 하신다. 성령님은 직접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가령 어머니가 직접 야단을 치면 알아듣지 못하니, 첫째 아들을 불러서 둘째 아들을 잘 타일러보라고 알려줄 때가 있다. 첫째 아들이 동생인 둘째 아들에게 어머니의 입장을 대변해서 잘 설명하면, 둘째 아들은 알아듣고서 게임중독에 빠진 자신의 습관을 고치면 된다. 그렇게 알아듣게 설명했는데도 게임중독에 빠진 것을 스스로 끊지 않으면 그때는 다른 방법으로 말하게 된다. 이와 같다.
성령님은 생각으로 생각나게 하시고, 감동으로 하고싶은 마음을 주시고, 사랑하는 자를 통해서 하도록 말씀을 주시고, 때로는 호통을 치신다. 사람을 통해서 하게 하시고, 막으신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성령님의 상징이 되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가 말하면 들으니, 사랑하는 자를 통해서 성령님은 말씀하신다. 얼마나 아릅답고 절묘한 비유이며, 성령님이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인가?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겪고, 묶였던 그 어떤 사건이 풀렸다. 더불어 나의 인격이 부족한 것도 알게 됐다.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그 무엇을 해주고 싶을 때, 그것이 나만의 감동은 아님을 알게 되었고, 내가 그 무엇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나의 마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경우를 돌아봤다. 처음 강의를 했을 때, 나에게 강의를 연결해준 교육가가 “창훈씨 강의는 힘이 넘치는데, 너무 힘있게 하지 말고, 편하게 해요”라고 했다. 그 조언의 의미를 정말로 깊게 분석했다. 그리고, 한양대 교수를 통해서 내 강의의 단점을 알게 됐다. 이후로 나는 마이크를 학생들에게 넘기는 법을 터득했다.
또 어떤 분은 내게 “창훈씨는 한문이 재능이고, 한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창훈씨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예요, 그것을 포기하지 말아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한문에 3개월 정도 온전히 투자해서, 한문의 날개를 달았다. 사람을 통해서 조언이 올 때, 나는 그 말을 귀하게 여기는 습관을 분명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을 통해 성령님은 항상 조언하고, 지적하고, 훈육함을 알아야한다. 사람은 항상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완전의 방향을 찾아가는 인생이므로, 성령의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정보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사람을 통해 성령이 알려주는 충고가 길이 됨을 알아야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조언을 통해 내 자신을 조각함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 해당 신앙칼럼은 정명석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쓴 감동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