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인 행위는 결코 해서는 안된다. 끝이 안 좋다. 재건축재개발 업계에서 간혹 ‘공청회 절차’를 거치는데, 대부분 요식행위다. 그냥 절차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그런 요식행위는 형식에 불과하다. 형식은 결국 끝이 안 좋다. 할 필요가 없고, 무의미하다.
기도를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형식적으로 할 때가 많았다. 형식적인 기도는 ‘주기도문’을 주문외우듯이 녹음기처럼 말을 하는 것인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누군가 내 앞에서 한다면, 나는 듣고 싶지 않다. 남의 말을 전달하는 자들의 말이 그와 같다. 들어보면 안다. 귀가 앵앵앵 시끄럽게 울려대는 남의 말을 옮기는 자들의 말말말, 그것은 형식적인 말이다. 외식하는 중언부언의 기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형식은 자리에만 앉아있는 것이다. 타이틀이나 간판이나 명함은 그저 형식이다. 그런 형식은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간판과 명함은 그 실력이 입증할 때 효력이 나타난다. 실력이 없으면서 그 간판으로 활동하면 결국 들통나고, 낭패다. 그것도 형식이다.
신앙인은 특히 형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누가 온다고 대청소하는 것이나 생방송 연결된다고 해서 정장을 차려입고 오는 것은 모두 형식이다. 형식이 형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평소생활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내가 본 어떤 단체에서 지도자는 중요한 모임에는 정장을 입고, 중요하지 않은 모임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머리는 까치 머리로 다닌다. 형식이다. 공식적인 모임인데도 차림을 대충하고 나타나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 모임에 맞는 옷차림을 갖추는 것은 정성에 달려있다.
그렇다고 내가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사람을 의식할 때가 많다. 교회를 다니거나, 어떤 모임에 참석하거나, 취재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집필하거나, 형식적인 성과에 몰입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요즘 나는 형식은 무익하고, 실질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형식적인 틀에 얽매일 필요가 있는가? 특히, 기도할 때는 형식적인 내용은 무의미하다. 대통령만 만나도 부탁할 때 정성을 다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과 성령님을 만나는 귀한 자리에서 녹음기 틀 듯 그렇게 말하면, 아!! 끔찍 자체다.